[단편/소설] 김진석이 우울증에 걸렸대(5)

5화 - 베짱이가 개미보다 힘들 때도 있다

김준모 | 기사승인 2021/05/25

[단편/소설] 김진석이 우울증에 걸렸대(5)

5화 - 베짱이가 개미보다 힘들 때도 있다

김준모 | 입력 : 2021/05/25 [10:00]

이별

 

                           김진석

 

 

떠나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지만

, 아직은 추해지고 싶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게 젊은이들의

놀이문화라지만

, 아직 꼰대이고 싶다

 

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알아서 진다는데

, 꽃이 아닌 잡초이고 싶다

 

시간은 왜 저수지가 아닌 강을 따라 흐르는 건지

 

 

미진이 가장 좋아하는 진석의 시다. 다은이 이야기한 느낌 그대로다. 읽을 때는 재미있다. 기억에도 남는다. 그런데 깊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도서관 3층에 갈 때면 진석이 보였다. 한 손에는 책을, 다른 한 손에는 펜을 쥐고 좋은 문장을 공책에 옮겨 적고 있었다. 동기들은 책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끼어든다고 했다. 안 본 작품도 없어서 화제를 어떻게 바꿔도 꼭 한 마디 붙인다고 사색이 된 표정으로 말했다. 진석을 다시 떠올린 건 대학교 2학년, 시창작 수업에서다. 매주 5명씩 돌아가며 창작시를 한 편씩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미진의 시는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엄지손가락을 들며 칭찬하는 모습에 만족을 느꼈다. 다만 교수는 다른 의견을 내비쳤다.

 

-좋은 시라는 게 높은 수준을 담아내는 거라면 세상에서 시를 가장 잘 쓰는 건 철학자일 거라는 말이 있어요. 미진양이 쓴 건, 시라기 보다는 철학을 나열한 거에 가까워. 그래도 잘 썼어요. 들어와요.

 

이해할 수 없었다. 순대를 취업준비생의 하루에 빗대어 대충 쓴 시에도 아이디어가 좋다며 칭찬했던 교수가 선배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밤새 쓴 시를 꼬집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었다. 미진은 교수실을 찾아갔다. 따뜻한 녹차를 건넨 교수에게 미진은 대뜸 질문을 던졌다.

 

-오해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듣기에는 교수님께서 제 시가 별로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미진 양, 우선 오해하지 말아요. 난 미진 양을 의심하지 않아요. 미진 양은 문학특기생으로 들어온 학생이고, 내가 가르친 그 어떤 학생보다 재능이 뛰어나니까요. 다만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건 마음의 문제예요. 문학은 머리로 이해시키는 게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게 중요해요. 한 줄이라도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쓰는 게 나를 포함한 시인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에요. 미진 양도 시인을 꿈꾼다면 꼭 그런 시를 쓰길 바라요.

 

그날 이후였을 것이다. 미진은 진석 같은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진석은 순수하다. 도화지 같은 사람이다. 빨간 물감을 맞으면 빨간 색이 되고, 노란 물감을 맞으면 노란 색이 된다. 그의 감정은 글에 투영된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교내 문학상에서 3등을 차지했을 때, 그는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때의 얼굴을 떠올릴 때, 이번에도 명지가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은실이 찾는다며 손짓한다.

 

-자기 남편 일은 좀 괜찮아? 큰 문제는 없는 거지.

 

회사 사람들에게는 둘러댔다. 영화 작업에 문제가 좀 있었다. 제작사와 갈등이 있었는데 서로 오해를 풀고 잘 해결됐다. 제작사 측에서 남편을 찾아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갔던 것이다. 정말 미안하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 여겼지만 그럭저럭 잘 무마된 거 같다.

 

-다름 아니라, 이번에 신인작가 15명이 뭉쳐서 단편소설집을 내기로 했는데, 한 분이 건강상 문제로 빠지기로 해서. 자기가 해보는 게 어떨까 해서 불렀어.

-요즘 떠오르는 영감도 없고, 전문적인 작가 분들이랑 한 작품집에 실리는 것도 좀 그러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작가 분들, 자기 덕분에 아이디어가 술술 나온다고 그래. 자기는 아는 것만 많은 AI 로봇이라고 본인을 칭하는데, 내가 볼 땐 아니야. 자기 재능 있어. 괜히 고속승진 시킨 거 아니야, 알지? 그러니까 시간 두고 잘 생각해 봐.

 

처음 자전거를 탈 때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혹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한다. 미진의 역할은 그 감정을 이겨내도록 잡아주는 거다. 아이디어는 작가의 머릿속에 모두 존재한다. 다만 그 생각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에 꺼내는 걸 망설인다. 미진이 긍정적인 대답과 따뜻한 미소를 보내면 작가는 안정을 얻는다.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있다고 믿고 나아가는 거처럼 책을 완성할 수 있다. 그 조그마한 역할의 쾌감을 알게 된 건 진석에게서다.

 

-내가 지적하는 게 기분 나쁠 수 있어. 당신은 나보다 7살이나 많고, 글도 13살 때부터 써 온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이건 연습이라고 생각해.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 좋던 싫던 당신 의견이 무시당하거나 수정될 수 있어. 그러니까 먼저 매 맞는다고 여겨, 알았지?

-네네, 마님께서 친히 제 글을 봐 주신다는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 어디가 문제라 매번 떨어지는지 살펴주시죠.

 

5번째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였다. 결혼하고 2, 진석은 자기 손으로 땡전 한 푼 벌지 못했다. 명지는 어쩌다 보니 출판사에 들어왔다며 살다 보면 무언가 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틀렸다. 살아도 아무것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미진은 진석을 보고 그리 생각했다. 피곤하다는 진석을 붙잡고 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진석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왜 그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는지에 대해 길고 긴 토론을 나눴다.

 

-내가 말이지, 머릿속에 정말 많은 아이디어가 있어. 이미 머릿속에서는 아카데미고, 칸이고 다 정복한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이 두 손으로 쓰면 엉망이 되는 거 있지. 말 잘 하는 사람은 글도 잘 쓴다는데 난 아닌가 봐.

-오빠 말도 못하거든? 오빠는 말이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야. 누가 곁에 붙어서 밀어주고 당겨줘야 해. 지금은 내가 그 역할을 하지만, 조만간 나보다 더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그때는 지금처럼 피곤하다고 하품하고 그러면 안 돼, 알았지?

-내 우주에 별은 많아도 태양은 너 하나다. 마지막 컨펌은 당신한테 받을게.

 

처음 미진의 손을 탄 그 시나리오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때의 미소와 환희, 서로를 껴안은 촉감, 얼굴에 떨어진 눈물의 온기, 기념으로 먹은 소고기의 냄새를 미진은 여전히 기억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진석의 글을 보지 않게 된 것이. 인천 감독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영화를 하라고 했다. 폭력, 살인, 범죄 등등 진석의 작품세계는 난잡했다. 미진의 충고에 지금은 이것저것 시험해보는 단계라며 말을 잘랐다. 이건 내 꿈이지 당신 게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렇게 자기 잘난 사람이 지금은 탁자 위에 먹다 남긴 컵라면과 편의점 김밥을 놔두고 방문을 잠그고 있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미진은 열쇠를 찾아 방문을 연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멍한 표정으로 방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있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 언제까지 시간만 죽일 거냐고!

 

말이 없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도 않는다.

 

-안 아까워? 자기 성공하고 싶다고 그랬잖아. CGV고 메가박스고 당신 영화로 도배되길 원했잖아. 이제 그렇게 해주겠다는데 왜 그러는 건데. 나 같으면 정신이 무너지고 몸이 망가져도 촬영장으로 가. 가서 뭐라도 한다고. 인천 감독님이 그랬잖아. 가서 앉아만 있어달라고. 당신만 가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하냐고. 당신 애야? 뭐가 그리 힘든데.

 

초점 없는 눈은 여전히 미진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줄까? 내가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당신이야. 좋은 부모 만나서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해보고, 서른 살 넘어서까지 집에서 늦잠 자고, 밤새 게임하고. 감독이 되어서는 찍고 싶은 건 다 찍어보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이젠 고생 좀 해. 이 정도 힘든 것도 못 이겨내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부모님한테도 오지 말라고 연락했다면서. 나도 보기 싫어서 문 잠근 거잖아. 다 당신 도와준 사람들이야. 고생은 당신 부모님이, 회사 식구들이, 그리고 내가, 내가! 내가 다 했다고!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도 귀찮은가 보다.

 

-그런데 왜 당신이 힘든 건데. 왜 당신이 우울증에 걸린 거냐고...

 

미진은 주저앉는다. 강을 막고 있던 댐은 마을에 온기가 남지 않았음을 확인하자 문을 열어 거센 폭포와도 같은 눈물을 방류한다. 방 안이 호수가 되는 게 싫었는지, 아니면 꺽꺽 거리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이 거슬렀는지 겉옷을 챙긴 남편은 조용히 현관문을 나선다.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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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5.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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