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가 되새겨준 가장 큰 복

김혜란 | 기사승인 2021/06/03

나는 참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가 되새겨준 가장 큰 복

김혜란 | 입력 : 2021/06/03 [10:00]

[씨네리와인드 Ⅰ 김혜란 리뷰어] 인생이라는 기차에 올라탄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앞을 향해 달려야 한다. 지나간 역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무심코 지나쳤던 역은 때론 추억이란 이름으로, ‘미련이란 이름으로, ‘후회란 이름으로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삶에 후회라는 이름의 역이 많아짐을 느낀다. 터무니없는 상상이지만, 가끔은 5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1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스스로 묻곤 했다. 그때마다 늘 되돌아가는 선택을 했지만, 근래에 들어선 부쩍 망설여지는 경우가 잦다. 나의 선택-어차피 이뤄지지도 않을 상상의 선택-을 흔든 건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영향이 크다.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 찬란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찬실은 한평생 영화PD로 영화 업계에 몸담아 왔지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차도 올라갈 수 없는 비탈진 언덕 위의 집. 첫 만남부터 뭔가 미심쩍은 집주인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꾸역꾸역 이사를 간 찬실은 그나마 이사를 도와준 후배들 덕분에 북적북적하게 하루를 보낸다. 친분이 있던 배우 소피찬실의 처지를 안쓰러워하며, 그를 가사도우미로 채용하게 된다. 그 와중에 ‘찬실소피의 프랑스 과외 선생인 이에게 첫눈에 호감을 느낀다. 40살이 될 때까지 이뤄낸 건 아무것도 없다고 자책하던 그에게 이렇게나 갑작스러운 설렘이 찾아온다.

 

그러던 중 더 기막힌 일이 찬실에게 벌어진다. 집주인 할머니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방에서 웬 러닝셔츠에 하얀 트렁크를 입은 남자 귀신-아마 <아비정전> 속 유명한 장국영의 복장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는-이 등장한 것. 본인 입으로 자신을 장국영이라고 칭한 그는 찬실앞에 나타나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찬실과 잘 지낼 거라는 귀신의 말을 믿고 고백하지만 정중하게 거절당한다. 귀신을 탓하는 찬실에게 귀신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고민 끝에 찬실은 영화를 그만두려고 마음먹으며 가지고 있던 영화책을 모두 내놓는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영화 시나리오-‘소피에 따르면 지루해서 하품이 나오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간다.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 찬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언뜻 보면 너무나도 불행해 보이는 찬실의 이야기는, 산뜻한 연출과 판타지적인 설정이 만나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로 그려진다. 결말에 다다르게 되면 제목처럼 '찬실'이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일자리가 없는 찬실에게 기꺼이 일을 주는 소피’, 잠깐이지만 설렘을 안겨주고 다시 그의 친구가 되는 ’, 자신의 간절한 바람이 투영된 듯한 '장국영', 가장 힘든 순간 감동과 깨달음을 준 주인집 할머니, 가파른 길을 마다치 않고 이삿짐을 옮겨주는 후배들. 모두가 한순간에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그를 지탱해주고 있다. 굵고 얇은 불행들 속에서도 찬실이 그다지 불행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렇듯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8할을 차지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반드시 얼굴도 기억 못 할 이들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간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내가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을 땐, 늘 사람 덕분이었다. 물론 사람 때문에 죽고 싶기도 했지만, 삶의 의지를 맨 처음으로 불어넣어 주는 건 언제나 나 자신도 아니고, 완벽한 타인들에 의해서였다. 사람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인복이라는 단어의 존재 자체가 개인이 또 다른 개인에게 얼마나 큰 행운이 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와닿을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살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사람으로부터 온다는 확신이 있다. 아무리 진창과 같은 삶에서도 한 사람이라도 내 편이 되어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조잘거린다면, 설움 가득한 이야기에 가만 등 쓸어준다면, 그 생은 성공한 삶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별거 아닌 말도 웃으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부담 없이 만나고 전화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끔은 슬픔을 못 이겨 감정을 다 토해내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얼마나 복 많은 삶인가!

 

시간을 되돌린다면, 아마 지금과는 다른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다 도전해 볼 수도, 저평가된 주식-시간을 돌리는 걸 심각하게 고려한 요소다-을 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지금의 나이가 됐을 때, 더 성장한, 더 부유한 나와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망설여지는 단 하나의 이유는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아마 특별한 자각 없이 매 순간 날 구해내고 있을 사람들 때문이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 똑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똑같은 애틋함을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의 나는, 나의 부단한 노력과 더불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든 ‘추억’, ‘미련’, ‘후회더 나아가 상처라는 역까지 다 나의 발자취가 되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쓸 때 아주 사소한 오타도 참지 못하여 다신 그 글을 읽지 않는 성미를 가진 내가, 좋은 추억보다 밤마다 혼자 이불 차며 사소한 후회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라운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 찬란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해.”

 

집주인 할머니는 '찬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화 속 할머니처럼 전력투구해도 삶을 제 뜻대로 살 수 없음을 알 정도로 경험이 많지도, 지혜롭지도 않지만, 오늘 하루의 내가 내일 하루의 나를 이루고, 그게 결국 모든 나를 이루리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혹자는 '나이 드는 것'은 '실수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했다그럼 인생은 평온해지겠지만그만큼 재미는 없어진다실수할 나이에 실수를 해 보고, 아파할 나이에 아파도 해 보는 것. 그것이 성장에 가장 좋은, 지독한 거름임을 이제는 안다. 아마 영화 속 집주인 할머니도 그런 상처와 기억을 짊어지고 저렇게 멋진 삶의 지혜를 얻은 것일 테니.

 

다시 처음 질문의 확답이 필요할 듯싶다.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끈질기고 치열한 고민 끝에 지금은 아니야.’라고 말할 것이다. 과거로 시간을 돌려서 혹여 무언갈 해내거나 치명적인 실수를 만회한대도 껍데기밖에 없는떨림이라곤 없는 빛바랜 시간만이 내 미래를 채우고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후회하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보는 것. 그들과 하루하루를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정말 결과는 상관없다. 잘 해내든, 못 해내든 이 세상에서 누군가 한 명-그 누군가가 설사 자신이라도-은 박수를 보낼 테니. 수많은 사람의 도움과 마음이 있었을 테니. 텅 빈 관객석에서 러닝셔츠 차림의 귀신만이 박수를 보내는 영화를 만든 '찬실'이가 안쓰럽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가 어떻게든 해냈기 때문이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해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나도 '찬실'이처럼 결국 뭐든 해내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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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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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6.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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