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작은 숲을 찾아서

Review|'리틀 포레스트'(2018)

한서희 | 기사승인 2021/06/07

마음 속, 작은 숲을 찾아서

Review|'리틀 포레스트'(2018)

한서희 | 입력 : 2021/06/07 [10:30]

[씨네리와인드|한서희 리뷰어] 

 

도시에 쫓기다

 

참, 사는 게 녹록지 않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라는 인터넷 밈(MEME)이 유행하고, 원하는 것은 전부 포기한다는 신조어 'N포 세대'는 이제 대중음악 가사에서도 쓰인다. 한국 사회 내부에는 취업이나 결혼처럼 사회가 정한 성공의 척도가 존재하며, 21세기 청년들은 이를 쟁취하려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에 더 가까운 현실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같다. 개인의 삶의 행복을 희생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지쳐간다. 이들은 텅 비어버린 몸과 마음을 어디에서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나름의 답을 내놓고 있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주인공 혜원은 꿈꿨던 연애도, 일도, 임용고시도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로 도망치듯 농촌으로 내려온다. 혜원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온 이유는, '배고파서'다. 아르바이트 도중 삼각김밥을 허겁지겁 급하게 먹거나 알맞은 시간을 놓쳐 상하고 만 편의점 도시락으로 자주 끼니를 때운다. “인스턴트 음식은 나의 허기를 채우기에 부족했다”라는 혜원. 그녀는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데가 있는 도시의 삶에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허기'를 느낀다. 게다가 혜원이 도시라는 공간에서 홀로 머무는 방 안에는 그 흔한 시계 하나가 없다. 그저 차가운 벽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며 살아갈 뿐이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수동적이며, 타인에 의해 움직인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혜원은 취객이 찾아와도 소리 한번 크게 낼 수 없다. 혜원은 타인을 위해 노동하고, 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살아간다. 혜원은 도시의 삶을 견디지 못한 채,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며 농촌으로 내려온다. 한편, 혜원의 친구 재하도 도시에서 월급을 받는 기업의 톱니로 살아간다. 재하는 일하는 내내 상사로부터 '어리버리'하다는 둥 '빠릿빠릿하게 못 한다’는 둥 조직 내부에서 필요한 시간과 속도에 의해 살기를 강요받는다. 재하는 혜원보다 먼저, 자신만의 삶을 되찾기 위해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둘 모두 주체성을 회복하고 스스로 삶의 리듬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농촌을 거닐다

 

▲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혜원이 처음 시골에 도착한 혜원이 바로 한 일은 밭에서 갓 딴 배추를 요리해 밥을 먹는 일이었다. 스스로 요리한 밥을 먹은 뒤에야 정서적 허기를 채우고 만족한 듯 몸을 편하게 누운 뒤 잠이 든다. 그 자체로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시간이다. 혜원은 도시의 각박한 삶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스스로 먹이고, 재우며 회복한다. 봄에는 꽃 파스타를, 여름에는 콩국수를, 가을에는 밤 조림을, 겨울에는 곶감을 만든다. 사시사철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공장에서 균일하게 찍어 나오는 편의점 음식이 아닌, 자연의 시간을 음미하며 스스로 만든, 계절에 어울리는 특별하고 건강한 제철 요리다.

 

스스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쫄쫄 굶게 되는 시골 깡촌이지만, 자연은 정직한 노력이 만드는 수확을 경험할 수 있는 따듯한 온기가 넘치는 곳이다. 성과나 결과를 위해 급하게 움직이는 근대 사회와 반대로, 농촌의 삶은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있는 과정 위주의 삶으로 그려진다. 혜원은 농촌의 공간에서 자연과 함께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눈을 치우고, 장작을 패고 밭일을 한다. 누군가가 시키거나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필요로 자신을 위해 자급자족하며 시간을 보낸다. 스스로를 살 찌우기 위한 기특한 노력이다.

 

▲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고향 미성리에서, 혜원은 엄마와의 추억과 친구들의 응원으로 상처를 회복한다. 혜원은 영화 내내 엄마를 추억하는 과정을 통해 언지 없이 하루아침에 훌쩍 떠나버린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고 성숙한다.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 위하여 혜원을 떠나려 했던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게 된 것이다. 또, 혜원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는 재하와 자신이 미성리로 돌아온 것을 귀신같이 알고 찾아오는 친구 은숙이 있다. 재하는 '이 태풍에도 안 떨어지고 끝까지 버티더라. 너랑 다르게'라고 말하며 혜원에게 사과를 건넨다. 혜원이 태풍을 견뎌 낸 사과처럼 모진 삶에서 스스로 이겨낼 힘을 가지길 응원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다.

 

나만의 작은 숲

 

▲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혜원은 엄마가 보낸 편지를 다시 읽고 미뤄두었던 답장을 쓴다. 농촌에서 네 계절의 시간을 오롯이 보내며 삶의 활기를 회복한 혜원은 도시에 다시 돌아와서도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혜원은 각박한 현대로 다시 돌아가 이전처럼 계약 아래 일한다. 하지만 그런 일상에서도 자신을 위한 소소한 행복을 찾아 나간다. 손수 만든 음식을 곧잘 챙겨 먹으며, 작은 화분도 가져다 둔다. 이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주체성을 회복하여 여유를 되찾은 혜원은 이전의 도시의 삶과는 다르게 활력 가득한 상태다. 모진 고통을 이겨내야 강한 양파가 된다는 ‘아주심기’ 과정처럼, 혜원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내고 단단해진다.

 

‘케렌시아’라는 말이 있다.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으로 투우 경기에서 소가 열띤 경기를 마치고 쉬어가는 공간이다. 인생이라는 서바이벌 경기에서 우리도 쉬어갈 안식처가 필요하다. 무대에서는 열과 성을 다해 지치더라도 언제든 찾아가 지쳐버린 나를 다시 살찌울 수 있는 무대 뒤 공간이 필요하다. 그곳이 농촌이든, 내 방이든, 아니면 아주 좋아하는 색감의 인테리어가 가득한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이든, 혹은 고양이나 강아지 사진을 잔뜩 찍고 구경하는 일이든 다 좋다. 내 마음을 푹 녹일 수 있는, 자신만의 힐링법, 혹은 케렌시아, 그러니까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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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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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6.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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