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단순히 야하기만 한 영화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68혁명과 누벨바그운동으로 되짚어본 영화 <몽상가들>

한수진 | 기사승인 2021/06/08

이 작품을 단순히 야하기만 한 영화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68혁명과 누벨바그운동으로 되짚어본 영화 <몽상가들>

한수진 | 입력 : 2021/06/08 [10:00]

[씨네리와인드ㅣ한수진 리뷰어] 흔히들 <몽상가들>을 ‘야한 영화의 대명사’라고 부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인물들의 나체와 성관계 장면이 노골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68혁명’과 ‘누벨바그 운동’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돋보기 삼아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이전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큰 축이 되는 두 가지 키워드를 먼저 살펴본 후, 영화를 다시금 곱씹어보자.

 

▲ '몽상가들' 포스터.  © 영화사 찬란

 

영화의 배경은 1968년의 프랑스, 봄의 이야기이다. 1945년 세계 2차대전 종전 이후, 유럽 세계의 관심사는 온통 세상을 전쟁 이전으로 돌리는 것에 있었다. 프랑스 역시 승전국이었지만 전쟁으로부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러한 부모 세대를 보고 자란 1968년의 대학생들은 자연스레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며 전쟁을 일으켰던 부모 세대에 대한 반발심을 갖고 있었고,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사회를 비판했다. 대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여성, 장애인, 노동자 등 모든 소수자 역시 평등을 외치며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 미국에까지 혁명의 바람이 불어 닥쳤으니, 이 혁명이 얼마나 거대한 움직임이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랑스 내부의 상황만 보자면, 당시 타도 대상이었던 샤를 드 골 대통령이 68운동으로 인해 퇴진했지만 곧이어 보수 정당이 집권했으므로 정치적으로는 실패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프랑스 내부에서는 68‘혁명’이 아닌 ‘운동’으로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의 대학명이 사라지고 그간 보수적이었던 사회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으므로 문화적으로는 성공한, 최초의 문화혁명이라고 명명된다.

 

▲ '몽상가들' 스틸컷.  © 영화사 찬란

 

특히 68혁명은 ‘성의 혁명’이라고도 불리는데, 현재 유럽이 성적으로 개방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계기가 68혁명일 정도로 당시 젊은이들은 성적 억압을 곧 인권 억압의 상징으로 생각하며 자유로운 연애관과 성적 가치관을 지향했다. 영화가 노골적으로 성적인 코드를 보이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 '몽상가들' 스틸컷.  © 영화사 찬란

 

영화의 도입부, 주인공 매튜가 “오직 프랑스인만이 궁전 안에 영화관을 지을 정도로 열정이 있다고 느꼈다”라고 말하며 향하던 장소를 기억하는가? 이곳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는 일종의 영화 도서관으로, 당시 영화계에 새로운 물결을 지향하며 영화를 사랑하던 시네필들의 집과도 같았던 장소였다. 새로운 물결이란 ‘누벨바그 운동’이라는 단어로 치환되는데, 기존 영화의 틀을 거부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감행했던 당시의 새로운 영화 사조를 뜻한다. <네 멋대로 해라> 등 수많은 명작을 남긴 감독인 장 뤽 고다르 역시 당대의 영화인 중 한 명이었다. <몽상가들> 속에 삽입되는 수많은 흑백영화 장면들은 대부분이 이 시기의 영화를 따온 것으로, 영화광인 쌍둥이는 해당 영화의 장면을 모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감독인 베르나르도 베르툴루치 역시 68혁명과 누벨바그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은 젊은 이탈리아인이었다. 마르크스를 숭배하는 공산당원이었던 그는 일찍이 프랑스에 가서 생활하며 68혁명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를 ‘마르크스를 숭배하던 젊은 공산당원 영화광’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테오가 되고, ‘프랑스에 거주하던 이탈리아인’으로 본다면 매튜가 된다. 이처럼 감독 자체가 68혁명과 몹시 관련이 있던 인물이었기에, 영화 <몽상가들>은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감독의 회고록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에서는 성적인 코드가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특히 쌍둥이 남매가 풍기는 묘한 뉘앙스는 둘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하도록 만드는데, 감독은 그사이에 ‘매튜’라는 이방인 관찰자를 투입하여 둘의 관계가 보기에 껄끄럽다는 느낌을 더욱 잘 전달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남매의 이 미묘한 관계는 서로를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는, 이상할 것 없는 행동이다. 영화가 소설 <The Holy Innocents>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오히려 이 행동은 ‘순수한’ 행동으로까지 읽힌다. 즉, 남매의 모든 행동은 의도성이 없는, Holy Innocent 한 행동이었지만 매튜로 대변되는 외부인,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불순하고 이상한 행동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 '몽상가들' 스틸컷.  © 영화사 찬란

 

하지만 역사에 남았던 모든 행동, 사상 등 그 어떤 것일지라도 이러한 몽상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68혁명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마찬가지이다. 헛된 꿈에서 시작된 68혁명은 우리에게 금기시되었던 새로운 자유를 선물해 주었다. 몽상이란 그러므로 누구나 하는 것이고, 영화 속 테오와 매튜, 이자벨, 그리고 실제로 68혁명을 겪었던 베르나르도 베르툴루치 감독을 비롯한 당대의 젊은이들 모두는 자신의 이상향을 간직하며 행동을 준비한다는 데에서 몽상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몽상의 끝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매튜와 테오를 보여주면서 몽상 이후, ‘실천’과 ‘행동’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몽상을 몽상 안에서 끝낼지, 테오와 이자벨처럼 그것을 행동으로 실현해낼지의 결정은 가끔 68혁명처럼 세상을 바꿀 중대한 사건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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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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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6.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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