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라 명명된 객체에서 벗어나기

Review|'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김혜란 | 기사승인 2021/06/21

'뮤즈'라 명명된 객체에서 벗어나기

Review|'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김혜란 | 입력 : 2021/06/21 [10:1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뮤즈'는 거짓 개념이라는 것그들이 공동 창작자라는 걸 숨기기 위해

정형화되고 말을 잃은 여성으로 단순화시킨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씨네리와인드ㅣ김혜란 리뷰어] 제72회 칸 국제 영화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에 빛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셀린 시아마 감독은 영화에 대해 이렇게 코멘트했다. 감독의 이 말은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씨나몬㈜홈초이스

 

화가인 '마리안느'는 한 귀족 부인에게 은밀한 제안을 받는다. 바로 자신의 딸인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것. '엘로이즈'는 정략결혼에 불만을 품고 정혼자에게 보낼 초상화를 위한 포즈를 잡지 않기에 '마리안느'는 산책 친구로 위장해 '엘로이즈'를 관찰하여 초상화를 완성한다. 그러나 그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결국, 초상화가 완성된 후 '마리안느''엘로이즈'에게 진실을 밝힌다. '엘로이즈'는 실망의 기색을 내비치고, 초상화를 보곤 진지한 태도로 혹평한다. 당혹스러워하던 '마리안느'는 이내 그림을 지우고, 완성된 초상화를 제시간에 보여주지 못해 내쫓길 위기에 처한다. 이에 '엘로이즈'는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하겠다고 말하며, '마리안느'가 쫓겨나지 않게 도와준다.

 

부인이 떠난 5일 동안 그림을 다시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하녀인 '소피' 그리고 '엘로이즈'와 함께 소소한 추억을 쌓으며 평온한 날들을 보낸다. 그렇게 '마리안느''엘로이즈'의 사이는 가까워지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초상화는 점점 완성되어 가고, 그들의 사랑도 더 깊어져 가지만 이별의 순간은 잔인하게 당도한다. 부인이 돌아오고, 완성된 초상화 앞에서 그들은 그렇게 영영 이별한다. 수년 뒤 '마리안느''엘로이즈' 앞에서 서툴게 연주했던 비발디의 사계가 연주되는 공연장에서 '마리안느'는 공연을 보는 '엘로이즈'를 멀찍이서 발견한다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씨나몬㈜홈초이스

 

평등과 공존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강박적이게 느껴질 정도인 평등의 시선이다. 그려지는 대상이 보통 객체로 전락하는 초상화를 그릴 때는 물론이고, 인물들을 담는 카메라 또한 불평등한 시선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하다. 이러한 점은 계급이 다른 '마리안느', '엘로이즈', '소피' 세 사람이 함께할 때 더 명징하게 드러난다. 하녀 '소피'가 십자수를 놓는 동안 같은 앵글에 놓인 화가 '마리안느'가 와인을 따르고, 귀족 '엘로이즈'가 식사를 준비한다. 억압의 존재로 그려지던 성은 세 사람의 평등하고 안락한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은 낙원으로 변모한다. 뿐만 아니라 카드놀이를 하는 장면은 앵글의 구도와 크기가 정확하게 똑같이 세 사람에게 할당된다. 이러한 의도적인 촬영에서 감독의 평등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알 수 있다.

  

내용의 큰 줄기가 '소피'의 임신중절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소피'의 임신중절의 전 과정을 그들은 함께한다. 억지로 몸을 고생시키고, 약초를 캐고, 시술받는 과정을 지켜보고, 나아가 이를 그림으로 옮긴다.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하녀인 '소피'에게도 상당한 역할과 분량을 할애한 것 자체로 '평등'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견인책이었는지 의미한다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씨나몬㈜홈초이스

 

여성의 영화

 

셀린 시아마 감독은 여성의 이야기를 탁월하게 담아내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이 영화 또한 철저히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남성들의 관계, 감정, 협력을 다룬 영화가 무수한 데에 반해 여성들의 그것들을 다룬 영화의 수가 현저히 적은 것을 생각하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초반과 후반에 나오는 미미한 존재감의 남성들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선 남성을 보기도 힘들다. 영화 속에는 캐릭터로서 등장하는 남성은 한 명도 없다. 심지어는 엘로이즈와 정략결혼을 맺는 귀족에 대한 묘사도 밀라노에 산다는 것 빼고는 일절 거론되지 않는다.

 

철저히 여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다짐은 앞서 언급한 소피의 임신에서도 잘 드러난다. 으레 임신중절을 다룰 때 등장하는 남자의 정체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3개월째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소피'의 말에 '마리안느'는 그저 아이를 원하는지 물을 뿐이다. 많은 이가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는 합창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기괴한 비명같이만 들리던 여성들의 소리는 어느새 화음을 이루며 아름다운 노래가 된다. 서로 눈을 맞추고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얼굴엔 불안함이나 억압은 찾기 힘들다. '그들은 도망칠 수 없다.'는 역설적인 가사엔 비장함마저 감돈다. 이렇듯 감독이 여성의 삶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과 여성의 이야기만을 하겠다는 의지는 함축적인 연출을 통해 유의미하게 전달된다.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씨나몬㈜홈초이스

 

뮤즈라 명명된 객체

 

예술사 속 수많은 뮤즈는 남성에 의해서 탐닉되는 존재임과 동시에 남성을 성장시키는 동력으로만 그려졌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지워지고 수동적인 객체로서의 의미만 찾을 수 있었다. 이는 '착취'의 개념과 동일하다. 무언갈, 누군갈 착취하는 시선에 대한 강한 경고가 필요한 오늘날 셀린 시아마 감독은 아름다운 한 편의 로맨스 영화를 통해 경종을 울렸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뮤즈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을 가장 큰 주안점으로 삼았다. 뮤즈를 단순한 정물의 개념에서 벗어나게 하고, 적극적인 발화자로서 숨을 불어 넣으며 전통적인 뮤즈의 개념을 무너뜨렸다이는 영화 곳곳에 배치된 치밀하게 계산된 장면들로 알 수 있다.

 

'엘로이즈'의 사소한 습관들을 열거하며 자신이라도 관찰당하는 모델의 자리에 있으면 싫을 것이라는 '마리안느'의 말에 '엘로이즈'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리곤 모델의 자리인 자신의 옆으로 '마리안느'를 위치시키며 말한다. "당신이 날 볼 때 나는 누굴 보겠어요?" 이 말에는 관찰당하는 객체로서의 모델과 관찰하는 주체로서의 화가가 아니라 동등한 주체로서 시선을 가진 위치로 자신을 인식한다는 함의가 담겼다. 이처럼 시선의 권력을 뒤집어 관찰의 대상에 불과했던 뮤즈의 개념을 탁월하게 전복시킨다.

  

이는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읽는 장면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힘겹게 저승으로 간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에게 에우리디케를 살려달라 간청하여 승낙받지만, 결국 금기를 깨고 뒤를 돌아봐 에우리디케를 살리지 못한다. 이 비극적인 신화 속에서 우리는 에우리디케의 '존재감'과 '생명력'을 보지 못한다. 오르페우스의 의지에 따라 생명이 좌우되는 존재로서 그려지는 그는 무력할 뿐이다. 안타까운 결말에 대해 '너무 사랑해서 걱정됐다.' 혹은 '오르페우스가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마리안느'와 달리 '엘로이즈'는 이를 명쾌하게 뒤집는다.

 

"여자가 말했을 수도 있죠. 뒤돌아봐요."

 

이 생경한 해석엔 에우리디케의 의지가 보인다. 그동안 객체로서만 위치하던 에우리디케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며, 주체로서 기능하게 한다. 이런 해석을 극 중 가장 억압된 존재인 '엘로이즈'가 한 것도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나아가서 그들의 이별 장면과 재해석된 신화는 훌륭하게 연결된다. 이별의 시간, 슬픔에 빠져 성급하게 발걸음을 옮겨 떠나가는 '마리안느'를 향해 '엘로이즈'는 뒤돌아보라고 말한다. '마리안느'는 뒤돌아 '엘로이즈'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눈에 담고 떠난다. 떠나야만 하는 '마리안느'와 남겨져야만 하는 '엘로이즈'의 필연적인 수동성을 주체성으로 대체하기 위한 이 색다른 방법은 뛰어난 설득력을 확보한다.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씨나몬㈜홈초이스

 

'엘로이즈'를 몰래 관찰하던 '마리안느'의 시선은 사랑이란 감정이 조금씩 피어오르면서 그 의미가 빠르게 변모한다. 염탐, 관찰을 거쳐서 비로소 사랑의 눈맞춤을 이룬 그들이 화폭에 담은 초상화는 단순한 관찰자의 시점에서 대상을 묘사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서로 교류하며 완성한 합작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몰래 관찰하여 그렸던 첫 번째 그림과는 달리 부재했던 인물의 '생명력''존재감'을 부여받은 그림이 된다. 이는 극중 대사처럼 '엘로이즈'의 변화로부터 비롯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깊은 교감을 통해 창작물, 나아가선 창작자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런 협력의 과정으로 모두가 만족스러운 초상화가 완성됨으로써 뮤즈가 결코 '관찰당하는 존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발화하는 공동 창작자'라는 주장에 방점을 찍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걸출한 로맨스 영화임과 동시에 그동안 수많은 여성의 예술 활동을 그저 '뮤즈'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렸던 것에 대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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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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