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나

Review|'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2001)

한서희 | 기사승인 2021/08/17

잊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나

Review|'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2001)

한서희 | 입력 : 2021/08/17 [09:15]

[씨네리와인드|한서희 리뷰어] 

 

황금과 욕망의 시대

 

치히로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이사하는 상황이 영 끌리지 않는다가던 길에 폐장된 테마파크에 잠시 정차하는데테마파크는 과거의 화려함은 온데간데없이 인적이 끊긴 듯 스산한 모습이다궁금해하는 어린 치히로에게 치히로의 아버지는 이런 테마파크들이 반짝 생겨났다가 금방 망하고 말았다고 말한다. 19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를 떠올리게 하는 설명이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 Studio Ghibli

 

치히로의 부모님은 욕망에 눈이 멀어 주인을 알 수 없는 음식을 먹게 되고결국 돼지의 모습으로 변하고 만다유바바의 여관 자체는 이라는 물질적 욕망으로 움직인다이곳의 직원들은 주체성을 잃은 사람들이다유바바의 성에서는 누구나 일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규칙에 본래의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해야 하며부당한 노동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유바바의 여관에서 일하게 된 치히로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마주한다돈을 벌어서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린이나사금에 눈이 멀어버린 개구리로부터 황금만능주의와 자본주의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얼굴도목소리도 없는 가오나시는 온갖 물건과 사람을 집어삼킨다욕망을 충족함에도 정서적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과 같다.

 

파괴된 세계의 잔해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 Studio Ghibli

 

물질만능주의로 발전한 시대와 파괴된 과거의 생태 사이의 간극을 좁힐 인물로 신화 속 영웅처럼 치히로가 등장한다치히로는 자연의 도움을 받는다인간 이기로 인해 파괴된 자연의 잔해를 모아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태계적 시각은 감독의 다른 작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천공의 섬 라퓨타등에서도 수없이 등장한다.

 

치히로에 조력하는 오염된 강의 신이 등장한다오염을 깨끗이 씻겨 내는 힘을 주는 물의 이미지와 강의 신으로부터 받은 물건으로 세상을 바로잡는다또한 하쿠를 구하며 파괴된 하천을 치유한다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는 역할을 치히로에게 부여하면서 영화 속에서 치히로는 일반적인 아이에서 세상을 구하는 한 명의 영웅으로 성장한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 Studio Ghibli

 

치히로의 힘은 순수함에 있다치히로는 센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척하면서도 물질적 성공에 한 발짝 멀리 거리를 둔다눈앞에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당장 먹어치우거나사금에 눈이 먼 사람들과는 달랐다모두가 피하려 하는 오물 신을 씻어야 하는 일에서 발 벗고 나선다영화는 세상에 때 탄 우리가 치히로처럼 순수하게 행동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잃어버리다

 

이름이란 한 사람을 사람으로 기능하도록 하는 대표성을 지니는 동시에 존재의 의의를 부여한다. ‘치히로는 다른 종사자들처럼 유바바에 의해 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를 강요받는다그런 치히로에게 하쿠는 이름을 잃으면 집에 갈 수 없다며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라고 말한다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신이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야 할 본래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의미다쉽게 타인에 의해 객체화되기 쉬운 물질적인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알려준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 Studio Ghibli

 

치히로는 하쿠를 구하기 위해 유바바의 언니 제니바를 찾아간다그 길에 기차에 반쯤 희미해진 채로 이름을 잃고 살아가는 승객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있는 치히로의 모습이 보인다제니바에게 본인의 이름이 치히로라고 말하고제니바는 아주 좋은 이름이라며 소중히 하라 한다결국치히로는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님을 찾아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영화 내에서 이름을 되찾은 사람은 치히로 뿐이 아니다유바바와의 계약으로 이름을 빼앗긴 하쿠는 오랜 시간 유바바의 지배를 받는다치히로는 하쿠의 본명이 자신이 알던 개천의 이름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본명을 되찾아주는 존재로 거듭난다주변에 의해 변해버린 '나'의 속 모습을 기억하고 알아봐 주는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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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희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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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8.1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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