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구덩이에 빠진 우리에게 손을 내밀다

Review|'메기'(Maggie, 2018)

홍수빈 | 기사승인 2021/10/18

의심의 구덩이에 빠진 우리에게 손을 내밀다

Review|'메기'(Maggie, 2018)

홍수빈 | 입력 : 2021/10/18 [16:54]

▲ <메기> 포스터 ⓒ 엣나인필름

 

[씨네리와인드|홍수빈 리뷰어때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아야 할 때가 있다. 나무가 되어서는 절대 숲을 볼 수 없다. 숲을 관망하려면 그 속에서 한참을 걸어 나와야 하는 법이다. 우리의 세상도 그렇다. 인간인 채로는 이 세상이 앓고 있는 병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비판하는 많은 창작물이 인간이 아닌 동물의 시선에서 세태를 풍자해 우리에게 넓은 시야를 선사해 주는 것이다.

 

<메기>는 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많고 많은 동물 중 생선의 전지적 시점에서 주인공 윤영과 성원의 세계를 전달한다. 메기의 눈으로 본 이 시대는 믿음이 끊임없이 배반당하고 타인을 의심해야 하는 불신의 시대다. 그러나 <메기>는 우리를 갈라놓고 마음 아프게 하는 의심을 절대적 악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또한 불신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유지해야 할지에 대한 교조적인 가르침도 주지 않는다. 영화는 그저 윤영의 믿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언제든지 윤영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우리들이 그녀를 응원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그렇게 <메기>는 익숙해진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우리가 불신이란 이름의 숲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일에 성공한다.

 

반복되는 의심,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시대

 

영화는 윤영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일어난 낯 뜨거운 사건으로 의심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연인의 비밀스러운 정사가 엑스레이 사진으로 포착돼 버린 것이다. 엑스레이 사진은 단숨에 병원의 화젯거리로 오른다. 병원 사람들 모두가 사진의 주인을 의심하는 가운데 윤영은 엑스레이 사진의 주인공이 그녀와 성원일 것으로 착각하고 만다. 청년 실업자였던 성원은 도시 이곳저곳에 생겨난 싱크홀을 보수하는 일에 고용된다. 성원은 일터에서 윤영이 선물해준 반지를 잃어버리고 마는데 그는 직장 동료가 반지를 훔쳐 갔다고 생각한다. 윤영에게 동기 부여를 주는 인물 경진은 어릴 적 철없는 아이들에게서 살인 미수범이라는 의심을 받아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인물이다. 의심은 영화 속 개별적인 사건들을 관통하고 포괄하는 가장 큰 주제다.

 

영화 속 싱크홀은 그러한 의심을 상징하는 하나의 은유로 등장한다. 깊고 깜깜한 싱크홀은 우리의 의심과 닮았다. 지각변동을 감지할 수 있는 메기는 수면 위로 튀어 올라 싱크홀을 예견한다. 싱크홀이 갑자기 발생한 땅의 변덕이 아니라면, 우리의 의심 역시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출몰한 마음의 변덕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틀이 어떤 형태냐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한다. <메기>는 연인과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갈등을 그려내고 있지만 개개인의 사적인 의심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 쌓이고 쌓여 그것이 폭발한 형태다.

 

<메기>는 청년실업, 불법 촬영, 데이트폭력 같은 사회 문제를 극 중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있다. 엑스레이 시퀀스가 바로 불법 촬영 문제를 다룬 시퀀스다. 이옥섭 감독은 엑스레이 시퀀스에 화장실에 가면서도, 관계를 맺으면서도 카메라에 찍힐 수 있다는 불안이 반영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런 불안은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가진 불안이며 내가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타인을 의심하고 우리의 일상을 싱크홀처럼 무너지게 한다. 성관계 장면이 찍힌 엑스레이 사진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생각한 사람은 윤영 한 사람만이 아니다. 병원 직원들 모두가 불법 촬영의 피해자라는 착각에 빠져 병원을 무단결근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엑스레이 버튼을 눌러 남의 사생활을 찍은 자에겐 관심도 없죠. 찍힌 게 누구인가, 그것에만, 그것에만 관심을 보였어요라고 말하는 메기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까지 날카롭게 비판한다.

 

▲ <메기> 스틸컷 © 엣나인필름

 

믿음은 고귀한 것이고 의심은 부정한 것? 이분법적 사고를 철폐하는 <메기>

 

영화는 엑스레이 사진 속 주인공을 전지적 작가 시점인 메기와 관객만 알 수 있게 할 뿐 영화 속 인물들에게까지 사실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메기의 말마따나 사실은 언제나 사실과 연관된 사람들에 의해서 편집되고 만들어지는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에 대한 이러한 가치관은 절대적이고 유일한 믿음을 부인해 의심의 당사자에게 위안을 준다. 그렇다면 메기는 불신을 다룬 작품들이 얽히고설킨 오해와 갈등 속에서도 단 하나의 고귀한 진리를 사수하려 할 때 홀로 다른 궤도를 도는 영화일 것이다.

 

윤영과 성원의 의심은 사실에 적중하기도, 빗나가기도 한다. 의심이 빗나가면 그것은 착각이었다는 안심과 함께 인간에 대한 믿음은 다시 회복된다. 엑스레이 사건으로 불신에 빠진 윤영은 병원 부장 경진과 함께 직장 동료들의 결근 사유를 믿어보기로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윤영과 경진이 찾아가기로 선택한 동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들은 사람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다짐의 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윤영은 또다시 불신의 늪에 빠지고 만다. 상처에서 총알을 꺼냈는데 사과를 깎다가 다쳤다는 환자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몇 분 전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고취되었던 윤영과 경진은 환자를 경찰에 신고한다. 윤영과 경진은 '의심이 발휘한 기지'를 헤드라인으로 기술한 신문 1면에 실린다.

 

성원 역시 자신이 잃어버린 것과 비슷한 반지를 끼고 있는 동료를 도둑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원이 무고한 사람을 도둑으로 의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번에 우리는 믿음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윤영과 성원에게 일어난 사건에는 상대방을 불신하게 만든 결정적 증거가 존재한다. 그런데 한 사건은 의심이 적중하고 다른 사건은 의심이 불발하게 된다면 우린 대체 어떤 기준으로 믿음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 <메기>를 보면 우리의 믿음이 하나의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일은 분명 비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영화는 믿음을 져버리는 의심 그 자체가 아니라 의심을 품다가 자기 자신의 마음마저 다치게 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라는 경진의 충고는 바로 그런 의미다.

 

▲ <메기> 스틸컷  © 엣나인필름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벌하다

 

성원은 반지를 훔쳐 갔다고 여겨진 용의자의 지갑에 손을 대 의심과 갈등의 구덩이를 더 깊게 파는 인물이다. 결국 동료와 사이가 틀어진 성원은 자신의 과오를 후회한다. 성원과 다르게 윤영은 결근한 직원을 직접 찾아가 전말을 확인하려 드는 모습을 보이는 등, 구덩이를 빠져나오기 위해 분투한다. 그런 그녀를 구덩이에 깊이 빠뜨린 치명타는 성원의 전 여자친구다. <메기>에서 연적의 등장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고 연인의 사랑을 더욱 돈독히 하는 장치가 아니다. 윤영이 성원의 전 여자친구에게서 듣게 된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녀는 성원에게 데이트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한다.

 

윤영은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의심에 깊이 빠질수록 성원을 향한 윤영의 의심은 피해망상적인 모습을 띠며 그녀를 갉아 먹는다. 성원은 윤영의 망상 속에서 그녀를 계단에서 떨어져 죽게 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남자친구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의심은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윤영의 의심은 현실 속 관객들의 의심과 공명한다. 지금도 현실에서 많은 사람이 연인에게 폭행과 살인을 당하지 않는가. 윤영의 불안은 사랑하는 사람이 폭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현실 세계의 불안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윤영은 의심의 구덩이를 빠져나오기로 한다. 윤영은 무작정 병원 직원을 찾아갔던 그 용기로 성원에게 여자를 때린 적 있냐고 질문한다. 결국 윤영의 의심은 사실에 적중하고 만다. 그때 수조 속에서 메기가 튀어 오르고 성원은 거대한 싱크홀에 빠져 죽는다. 가해자가 아닌 범죄 피해자에게만 주목하는 세상을 비판한 <메기>는 영화 속에서만이라도 가해자에게 단단히 벌을 내리려 한다. 싱크홀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윤영의 얼굴은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과 마주한다.

 

<메기>가 전하는 메시지

 

의심은 간악한 마음의 병으로 치부된다. 그에 반해 절대적인 믿음은 올곧은 마음으로 여겨진다. 신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게 했다. 충성심에 가까운 믿음을 보여준 아브라함은 진정한 신자로 평가받는다. 에로스를 믿지 못하고 그를 괴물로 생각한 프시케는 약속을 어기고 에로스의 얼굴을 확인한다. 프시케의 얄팍한 믿음에 실망한 에로스는 그녀를 떠나버리고 프시케는 에로스를 다시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러나 <메기>는 의심을 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한다. <메기>가 믿음이 허약한 윤영과 경진에게 의심을 발휘한 기지라는 칭호를 부여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잘못은 의심하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 불안한 사회에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식과 교육도 미비한 수준이다.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사람들은 구덩이에서 얼른 빠져나오기는커녕 구덩이만 더 깊게 팔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랑비에 옷 젖듯 폭력에 물든 사회는 불신의 시대를 만들었다. 사람을 쉽게 믿는 사람은 바보가 되고 피해자에게는 스스로 더 조심했어야 한다는 죄책감을 심어준다. 그래서 <메기>는 영화가 상영되는 순간순간 현실을 대신해 피해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메기>는 생선의 시각이라는 참신함을 통해 우리를 폭력에 익숙해진 사회에서 끌어낸다. 그렇게 돌아본 불신의 숲에서 영화는 의심을 품게 된 나무들을 위로하고 폭력의 피해자들을 따스하게 감싼다. 영화의 진정한 힘은 우리의 현실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다시 그 현실을 살아갈 지혜와 용기를 주는 것이다. 불신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믿음이 배반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의심의 구덩이 속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손 내미는 연대의 용기를, <메기>는 잔잔히 우리들에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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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빈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객원취재팀 기자단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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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10.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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