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유를 위해 시작한 여정

리들리 스콧, 「델마와 루이스」

한지나 | 기사승인 2021/11/17

새로운 자유를 위해 시작한 여정

리들리 스콧, 「델마와 루이스」

한지나 | 입력 : 2021/11/17 [12:44]

 

▲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씨네리와인드|한지나 객원기자트이지 못한 새로운 눈을 뜨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가치관과 세계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체득할 기회가 된다. 내가 알던 세상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권력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 무게를 떨치고 가벼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원치 않았던 상황과 직면할 때 비로소 새롭게 눈을 뜬다. 바로 델마와 루이스가 그들의 여행길에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자유에 눈을 뜬 것처럼.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두 명의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둔 로드 무비다. 그러나 그들이 오른 여정의 목적지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이 여정은 유형의 땅을 목적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여성을 짓눌러오던 세상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꿰차는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휴식을 찾아 떠난 델마와 루이스는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진정한 자유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각자의 자리에서 바삐 움직이는 델마와 루이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루이스는 절친한 델마와 떠날 휴가를 꿈꾸며 델마에게 전화를 건다. 들뜬 목소리로 짐은 다 쌌는지 묻지만 델마의 목소리는 밝지 않다. 델마의 여행에는 남편인 데릴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그런 델마에게 그는 너의 아빠가 아니라며 다그치지만 전화를 하는 중에도 델마는 남편의 출근 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인다. 그리곤 끊임없이 남편의 눈치를 보고 그의 윽박에 반응을 살피지만 끝내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못한다. 이것이 델마가 살아온 삶이다. 긴 시간 동안 다른 남자와의 교제 없이 데릴만을 만나고 그와 결혼한 델마는 데릴의 말에 순종하고 그를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이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루이스다. 델마에게 당당하고 똑 부러진 모습의 루이스는 단순히 친구를 넘어서 닮고자 하는 우상에 가깝다.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루이스가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흉내 내며 난 루이스야.’라고 말하는 델마의 모습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당찬 루이스와 그를 동경하는 델마. 이들의 여행은 순조롭고 즐거워만 보였다.

 

▲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하지만 휴식을 위해 시작한 여행은 낯선 남성의 등장과 함께 위기상황으로 뒤바뀐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들린 술집에서 만난 남성 할렌은 친근한 미소로 다가와 말을 걸고 술을 산다. 구속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신이 난 델마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 할렌은 델마와 단둘이 남게 되자 완전히 태도를 바꾸며 단호한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델마를 성폭행한다. 이를 발견한 루이스는 델마가 가져온 권총으로 그를 위협해 델마를 구해낸다. 그리고 그에게 여자가 이렇게 우는 것은 절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고 외치지만 그에게 총을 든 여성은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데도 그 주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두려움은 옅어진 것이다. 결국 그의 도발을 참지 못하고 루이스는 방아쇠를 당긴다. 이 한 번의 총성으로 인해 델마와 루이스의 여행은 도주라는 이름의 자유를 위한 여정으로 뒤바뀐다.

 

급하게 차를 타고 술집을 빠져나온 델마는 울면서 당장 경찰에게 가서 사실대로 털어놓자고 소리친다. 그러나 루이스는 세상이 그들의 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루이스는 델마와 춤을 추고 술을 마시던 남자가 델마를 강간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보이는 웃음은 때로는 그 여성을 의심해야만 하는 사유가 되고 그 여성을 믿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또한 강간의 증거가 있더라도 살인을 정당방위로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 강간보다 살인이 더한 죄가 되는 사회이니까. 그러나 강간죄와 살인죄의 엄중함을 단언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을 사람이 아닌 성적 쾌감을 위한 도구로 보는 것과 한 사람의 인생을 앗아가는 것. 우리는 정말 이 죄의 무게를 단언할 수 있을까. 루이스의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살인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악행이자 도덕적 자만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루이스가 왜 총을 쥐게 되었는지 왜 총구를 당겨야만 했는지 또 우리 사회가 성폭행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루이스가 텍사스에서 성폭행 피해를 입은 과거가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루이스의 총성은 델마를 지켜내기 위함과 동시에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 마지막 선택지이다.

 

결국 경찰을 따돌리고 멕시코로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둘에게 또다시 위기가 찾아온다. 이번에도 그들의 계획을 흔들어 놓은 주체는 남성이었다. 우연히 만난 젊은 청년 제이디에게 호감을 느낀 델마는 교통편이 없는 그를 태워다줄 것을 권유한다. 순진했던 델마는 그를 믿다가 그에게 멕시코로 갈 경비를 모두 도둑맞았고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던 루이스마저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영화는 영화의 제목이 왜 루이스와 델마가 아닌 델마와 루이스인지를 분명히 한다. 위기 상황 속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눈물을 보이며 마음약한 모습을 보여주던 델마가 변화한 것이다. 제이디가 자랑처럼 늘어놓은 강도질 수법을 델마가 그대로 터득한 것이다. 이전의 델마라면 상상할 수 없는 대범한 모습으로 경비를 털어 와 루이스를 깜짝 놀라게 한다. 뿐만 아니라 델마는 더 이상 남편 데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전화로 호통을 치는 남편에게 당신은 내 남편이지 아빠가 아니라고 답하고 과감히 욕설을 내뱉는다.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구속 속에서 살던 델마가 자신을 짓누르던 폭력에서 벗어나 첫걸음을 뗀 순간이다. 델마는 성장했고 이전과 같은 삶의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다시는 폭력적인 태도로 위협을 가하고 자신들을 겁내하지 않는 남성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는다. 델마와 루이스는 계속해서 자신들에게 차창 너머로 수준 낮은 성희롱을 퍼붓는 남성 트럭 운전사를 만난다. 아마 이전의 델마와 루이스였다면 계속해서 그를 무시하는 것이 최선의 대처였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적인 남성과 마주하는 법을 깨우친 델마와 루이스는 운전사와 직면해 그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할렌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자 그들은 총을 이용해 트럭을 폭파시키고 그를 굴복시킨다. 또한 영화 초반 화장과 악세사리로 겉모습을 치장하던 델마와 루이스는 영화 후반에 가서는 화장기 없는 얼굴과 편안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누빈다. 뿐만 아니라 루이스는 자신의 귀금속을 우연히 만난 노인의 카우보이 모자와 교환한다. 루이스는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규정한 여성성을 벗어던지고 여성에게 금기시되던 사회적 남성성을 손에 넣었다. 이처럼 델마와 루이스는 점차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던 숨겨진 삶의 가능성에 다가선다. 그들이 누려야 했지만 누릴 수 없던 삶에 대해 발견한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는 비로소 여성이 아닌 하나의 인간이 되었다.

 

이후 델마와 루이스를 추적하던 경찰은 제이디를 만나 네가 돈을 훔치지 않았어도 델마가 강도질을 했을까라며 그를 추궁한다. 이 대사는 영화의 중심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루이스의 살인, 델마의 강도질. 두 가지 모두 위법행위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의 위법행위를 향한 옹호가 아니다. 이들의 위법행위는 폭력적인 가부장제 사회를 향한 저항이자 남성 중심사회에 대한 극단적 표현이자 비유다. 총을 들고 위협했음에도 루이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던 할렌과 마지막 순간까지 사과하지 않던 트럭운전수. 둘 모두 여성이 극단적 행동을 보이기 전까지는 여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만약 할렌과 트럭운전수를 위협한 대상이 남성이었다면 그들이 위법 행위를 하지 않아도 그들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닥친 위기의 원인은 모두 그들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즉 경찰이 제이디에게 네가 돈을 훔치지 않았어도 델마가 강도질을 했을까라고 묻는 것은 관객을 향한 그리고 이 사회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여성을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있는지 그들이 극단적 표출을 하기 이전에 그들을 존중하고 겁내했는지 말이다. 왜 델마와 루이스는 총을 들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 '델마와 루이스;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계속되는 경찰의 추격에 도주를 이어가던 델마와 루이스. 델마는 루이스에게 한 번도 이렇게 깨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모든 게 달라 보여.’라는 말을 건넨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폭력적인 남성과 대립해왔고 그 과정에서 자유를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다. 사회가 강요하던 여성성과 억압에 저항하고 한 인간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깨우친 것이다. 결국 벼랑 끝에 몰린 둘에게 경찰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저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총을 들고 그들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다시는 남성 중심적 사회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절벽 앞에서 델마는 루이스에게 우리 잡히지 말고 계속 가자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로 절벽 너머로 향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더는 새로운 눈을 뜨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그들의 포부이자 다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의 이해도 보호도 아닌 한 인간으로 살아갈 자유였다. 델마와 루이스가 오른 여행길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한 여흥을 넘어서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 누려야만 했던 것에 대한 발견이었다.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 캐릭터를 성적 대상이나 보호의 대상으로 다루는 소모적 사용이 아닌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버디 무비에 여성을 앞세우며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는 남성 중심적으로 흘러가던 할리우드 계에 파장을 일으킴과 동시에 관객에게도 새로운 눈을 뜰 것을 권유했다. 마치 영화 속 델마와 루이스가 처음으로 깨어있음을 느낀 것처럼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유를 쟁취하는 일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그들처럼 부정한 권력에 맞서 총을 집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에 대한 주체성을 되찾았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새로운 눈을 뜨며 세상에 저항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달려 나가고 있다. 동시에 그들을 통제하고 짓누르려는 부당한 권력도 존재한다. 사회는 여전히 온순한 여성성을 원하고 삼고 여성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검열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지금 여성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눈을 뜨고 자유를 위해 삶을 위해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잡히지 않고 계속 가는 델마와 루이스처럼 우리는 오늘도 계속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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