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Review|'더 랍스터'(The Lobster, 2015)

홍수빈 | 기사승인 2021/11/30

사랑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Review|'더 랍스터'(The Lobster, 2015)

홍수빈 | 입력 : 2021/11/30 [10:45]

▲ '더 랍스터'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씨네리와인드|홍수빈 리뷰어오비디우스는 『변신이야기』에서 동물들의 기원을 설명한다. 그것은 생물의 진화 과정을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없었던 기원전 시대 사람들의 풍부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고대인들은 진화론이 주는 일직선의 이미지를 거슬러 인간도 동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만하고 경솔하여 신의 눈 밖에 난 인간들이 벌을 받으면 동물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절지동물 거미는 자신의 베 짜기 솜씨가 아테네 여신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 아라크네의 죄수복이다. 동물이 되는 변신은 신의 심기를 거스른 인간에게 가해졌던 처벌이다.

 

신화는 후대의 창작자들에게까지 영감을 주는 영원한 창작의 샘이다. <더 랍스터>는 인간이 벌을 받아 동물이 된다는 신화적 모티프를 주된 소재로 차용한 영화다. 이때 인간이 벌을 받아 마땅한 죄는 남녀가 가정을 이루지 않는 죄다. 처벌의 집행자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미혼자를 감시하고 검문하는 사회다. 홀몸인 사람들은 짝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주선하고 그래도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할 시 동물로 만들어버리는 호텔에 강제 이송당하지만 이러한 사회 시스템에 영화 속 누구도 궐기하지 않는다. 영화의 2부에서 데이비드가 호텔을 탈출한 사람들과 반란을 일으키지만 그들은 제도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안에서 형성된 사랑이 얼마나 나약한지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변신이야기』를 실화로 만드는 이 호텔은 담론을 구성하고 현 제도를 유지하는 세뇌의 장소이기도 하다. 아내와 이혼한 데이비드는 재혼할 사람을 찾기 위해 호텔로 옮겨진다. 데이비드가 이 호텔에서 겪는 일들은 훗날 그가 바깥에서 만나게 될 여자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서술된다. 이 역시 누군가 글로 옮겨적기 전까지 구전되어 전해지는 신화의 특징을 반영한다. 하지만 호텔이 운영되고 유지되는 규칙은 현실의 면모를 극대화한 결과다. 호텔은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자신의 신념대로 가정을 이루고 삶을 꾸리려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압제와 회유가 그대로 녹아있는 장소다. 호텔 매니저는 입주하는 사람들에게 동성애자냐 이성애자냐 묻지만 이후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사랑은 이성애뿐이다. 데이비드는 선택지로 양성애자를 묻지만 양성애자는 입적할 수 없다는 말이 돌아온다. 짝을 이룬 남자와 여자는 아이를 배분받아 기르게 되는데 이는 이성애자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정상 가족을 투영한다. 매니저들은 남성과 여성이 혼자 살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위기 상황을 시연해 결혼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안정성 추구는 현실의 결혼이 시행되고 유지되는 원리다. 결혼은 1인 가구가 겪는 여러 가지 위험과 제도적 불이익을 말소할 방안이기도 하다. 경제적 안정성, 고독사 방지, 범죄 예방은 기혼 가정이 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정의 결합이 이해관계와 잇속 계산의 산출물이 아닌 사랑의 결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호텔 매니저들이 사랑을 우선 조건으로 내건 까닭은 <더 랍스터>가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환상을 말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거짓말로 한 여자의 마음을 얻어 동물이 될 위기를 모면한다. 하지만 거짓말은 금방 들통나게 되고 여자는 “거짓으로 꾸민 관계는 용납 안 되는 거 잘 알 거야. 매니저에게 말할 거야. 당신은 처벌 대상이야”라고 이야기한다. 데이비드는 감정이 결여된 여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녀처럼 냉정한 사람이기를 연기했던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에리히 프롬의 논리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모든 문화는 구매욕 혹은 유리한 거래라는 관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사랑을 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구매욕을 자극하도록, 다시 말하자면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치장하고자 한다. 결국 사랑받기 유리한 사람이 된다는 말은 타인에게 강력하게 소구할 수 있는 상품이 된다는 말과 상통한다.

 

호텔 사람들은 공산품 인형처럼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처럼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인다. 그리고 데이비드가 감정 없는 여자에게 사랑받고자 냉소적인 사람을 연기한 것처럼, 절름발이 남자가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해로 코피를 내는 것처럼 그들은 타인의 맞춤 상품이 되어간다. 이들이 누리는 사랑은 지배 담론과 동시대 문화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한시적 사랑일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가 바깥에서 만난 사람들과 호텔에 침입해 이간질을 시도했을 때 이들의 사랑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진다. 오늘날 고난과 역경에 저항하는 강력한 의지로서의 사랑은 현대의 신화가 되어버렸다. 

 

▲ '더 랍스터'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우리는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 좋아하는 게 같은 사람, 관심사가 일치하는 사람을 쉽게 사랑한다. 상대방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기적처럼 느끼고 기뻐한다. 그러나 상대방과 내가 완벽히 일치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감정은 상대의 나와 다른 면모가 조금이라도 비치는 순간 실망으로 변질된다. 그것은 우리가 거울에 투영된 자화상을 사랑했던 것뿐이기 때문이다. <500일의 썸머>에서 톰은 썸머가 록밴드 ‘The Smiths’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톰과 썸머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고 톰은 이전에 사랑스러워 보였던 썸머의 특징들까지 미워 보이는 지경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둘의 시력이 좋지 않다는 공통점에서 시작된 데이비드와 근시 여인의 사랑은 그녀가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을 때 산산이 조각난다.

 

데이비드가 호텔을 탈출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2부에서는 1부와 정반대의 규율이 적용된다. 바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호텔 바깥 숲속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들은 입맞춤을 나눈 두 사람의 입술을 면도칼로 베는 ‘블러드 키스’ 형벌이나 그보다 더 심한 신체 훼손을 연인들에게 가한다. 사람들은 일렉트로닉 댄스곡에 맞춰 혼자서 춤을 즐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는 사랑이 불가능해진 곳에서 비로소 사랑을 느낀다. 우리가 영화 속 사랑을 동경하고 닮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 속의 연인들은 현실에 맞서 사랑을 낭만적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간직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장애물에 사랑을 타협하고 거래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와 근시 여인은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 공동체를 벗어나 도시로 도망가기로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사랑이 고난과 역경에 맞서 싸우는 힘이라는 걸 알았지만 자기애를 넘어 타인을 완전히 사랑하는 방법은 몰랐다. 

 

어쩌면 진정한 성장이 나를 둘러싼 세계를 부숴야만 가능한 것처럼 사랑 역시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일이란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 미시적인 관점에서 이기주의와 편협한 마음 등 나를 지배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돌아보는 일일 수 있다. 결말 속 데이비드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근시 여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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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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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11.3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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