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뒤에 숨겨진 인간의 냐악하고 악한 본성

「더 라이트하우스」 가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방식

이성현 | 기사승인 2022/01/07

상징 뒤에 숨겨진 인간의 냐악하고 악한 본성

「더 라이트하우스」 가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방식

이성현 | 입력 : 2022/01/07 [16:45]

[씨네리와인드|이성현 객원기자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장편 연출작은 현재까지 2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재 호러 장르에서 <유전>, <미드 소마> 희아리 애스터와 함께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이다. 그는 고딕 문화에 기반한 배경과 찝찝한 미장센을 바탕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한다. 『더 라이트하우스』는 그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부류의 호러영화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호러'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장르의 영화다. 호러라는 장르는 2000년대 초중반과는 달리 국내에서 잘 먹히지 않는다. 뻔하기 때문이다. 호러를 접근하는 방법론이 너무 많이 대중들에게 소비되면서 식상해졌다. 그 예시로 점프 스퀘어, 흔히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다)라고 불리는 연출법은 제임스 완의 <컨저링>, <인시디어스> 시리즈를 위시로 대중화된다. 현재는 이에 대해 또 점프 스퀘어냐, 지겹다는 반응이 많다. 심리적으로 관객을 옥죄어 오는 <유전>이 뒤늦게 입소문을 탄 이유이기도 하다.

 

「더 라이트하우스」는 상상을 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서 공포심을 자극한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요소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내용 자체는 쉽다. 주인공 둘, 토머스(윌렘 데포)와 에프라임(로버트 패틴슨) 이 갇힌 공간에서 불편한 동거를 이어나가는 게 전부다. 여기서 인어, 갈매기 등의 상징적인 요소와 함께에 프라임의 미세한 감정 변화가 내면에 잠재된 상상을 이끌어낸다.

 

▲ 영화 내에서 인물의 불안감을 이끌어내는 인어. <더 라이트하우스>(2019) 스틸컷.     ©A24

 

영화에서 주인공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등장하는 ‘생명체’는 인어와 갈매기뿐이다. 그만큼 작품 내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들이 어떤 상징으로 작용하는 지를 알아봐야 한다. 인어는 예전부터 서양에서 아름답지만, 또 파멸을 이끄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세이렌이 있다. 그리고 서양 전설 속의 인어를 살펴보면 주로 꿈에서 등장해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에서도 인어는 거의 에프라임의 꿈에서만 등장한다.

 

갈매기는 실제로 상당히 유약하고,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고 한다. 주요하게 등장하는 세 마리의 갈매기는 눈이 하나밖에 없다.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이 갈매기들은 에프라임과 연결된다고 봤다. 내내 보이는 그의 성격이 갈매기의 성향과 유사하고, 토머스를 바라보는 편견과 근시안적인 시선을 갈매기의 외눈박이인 특징이 표상한다. 결말부에 외눈박이 갈매기들과 에프라임의 운명이 동일하기도 하다. 마지막 컷에 에프라임을 뜯어먹는 갈매기들을 잘 보면 양쪽의 눈이 다 있다.

 

▲ 갈매기가 상징하는 것. <더 라이트하우스>(2019) 스틸컷.     ©A24

 

종합하면 <더 라이트하우스>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포심을 이야기한다. 인어는 에프라임의 꿈에서만 등장한다. 갈매기에 대한 해석도 오로지 작성자 본인의 주관일 뿐이다. 악한 인간의 본성을 가리기 위한 소품에 불과하다. 스토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컷을 모두 제거하면 토머스와 에프라임만 남는다. 인물의 파멸이 그 무엇도 아닌 타인과의 갈등, 그리고 고립된 환경에서 파생된 불안감에서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관객들도 인물의 감정에 자신을 이입하면서 감독이 걸어둔 덫에 자기도 모르게 걸려든다. 인어와 갈매기는 소품일 뿐인데, 보는 사람들은 저기에 굳이 의미를 부여해서 저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홍보물에는 두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극에서는 에프라임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상술한 스스로 만든 공포심과 불안감, 악한 본성은 모두 그의 몫이다. 토머스 또한 에프라임으로 하여금 이러한 심리를 배가하는 장치이다. 두 인물은 서먹했다가도 친하게 지내고, 싸우려 들다가도 금세 화해한다. 갈등의 동기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시덥잖은 것에서 시작한다. 전형적인 친구들 사이의 갈등양상이다. 유일하게 진지한 주제라고 한다면 등대에서의 역할 분담 문제일 뿐.

 

▲ 이 둘은 분명 친한 사이다. <더 라이트하우스>(2019) 스틸컷.     ©A24

 

그런데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에프라임은 유독 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마다 토머스의 비주얼은 평소보다 섬뜩하게 묘사된다. 역시 에프라임의 망상과 확대해석이다. 토머스와 친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그를 누르고 등대를 관리하고 싶은 욕망은 억누를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등대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는 것은 추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를 본인 대신 맡고 있는 토머스를 내면에서는 악인이라 명시하기에 별거 아닌 말에도 과민하게 반응한다. 이윽고 에프라임이 바라보는 그의 생김새에 변화가 일어난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이즈음에 에프라임은 욕망에 자신의 이성이 완전히 잠식당한다. 상황과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등대 위로 올라가 빛을 보려고 한다. 마침내 빛을 보는 데는 성공하지만 순간일 뿐이다.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는 다시는 그 빛을 볼 수 없다. 인간의 쾌락주의를 비판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이다. 빛을 바라보는 에프라임의 표정을 보자. 쾌락의 절정에 다다른 표정이다. 만약 그가 흑심을 키우지 않고 하던 일만 열심히 했다면 토머스는 분명히 그에게 등대 관리직을 양보했을 것이다. 친구이기도 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볼 수도 있다. 그 길지 않은 시간을 참지 못해 벌어진 비극이다.

 

▲ 쾌락과 공포,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에프라임의 표정. <더 라이트하우스>(2019) 스틸컷.     ©A24

 

로버트 에거스는 전작 <더 위치>에서도 인간의 악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 위치>는조금더 직접적이라면, <더 라이트하우스>는영화의 색채처럼 모호하다. 해석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 파멸의 원천은 인간 본성 그 자체라는 본인의 해석과는 정말 다를 수도 있다.

 

오는 4월, 북미에서 감독의 신작 「더 노스 맨」이 개봉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더 늦어질 수도 있다. 공포물이 아닌 시대극이라고 하는데, 단연 올해 개봉작 중 최고 기대작이다. 이번엔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인간의 악함을 묘사할지 관찰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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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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