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가 시도한 새로운 실험의 결과는

모든 장면이 살아 숨을 쉰다는 것

전소현 | 기사승인 2022/01/20

'벌새'가 시도한 새로운 실험의 결과는

모든 장면이 살아 숨을 쉰다는 것

전소현 | 입력 : 2022/01/20 [11:22]

[씨네리와인드|전소현 리뷰어관객에게 적당한 익숙함과 편안한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상업 영화의 따분함에 지쳐있을 때 샛별처럼 등장한 영화가 바로 『벌새』다. 대기업의 상품으로서의 영화, 자본 증식을 위한 영화, 그렇기에 관객들과 즉각적으로 유대감을 쌓기 유리한 그런 영화들이 생산되는 사악한 시스템이 정착되면서부터, 한국 영화 시장은 우리가 왜 영화를 찍고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러한 망각 지점에서 등장한 '벌새'는 영화에 대한 고찰과 진지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게 만든 생산적이고 진일보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벌새>는 앞선 사악한 상업 영화들과 달리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뻔한 스토리와 안정적인 결말, 예측 가능한 만듬새 등에서 벗어나, 모든 장면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살아서 숨을 쉰다. 이러한 <벌새>의 새로운 실험은 네 가지 관점으로 정리된다.

 

첫째, <벌새>는 장면 간의 연결성이 끈끈하지 않다. 본래 영화는 인관관계에 따라, 뒷 장면이 등장하면 앞 장면이 해소되면서 지워져 간다. 즉 A장면이 나오고 인과관계로서의 B장면이 등장하면 A장면이 깔끔하게 지워지며, 다시 C장면이 등장하면 B장면 역시 지워진다. 하지만 <벌새>가 시도한 실험은 다르다. 장면 간 연결성이 끈끈하지 않기 때문에, B장면의 등장에도 A장면은 살아 숨을 쉴 수 있고, C장면의 등장에도 역시 B장면은 오롯이 존재할 수 있다. <벌새>는 모든 장면들을 아주 생생하고 치열하고 철저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이전의 장면들이 지워질 수 없고,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벌새>에서 은희는 엄마를 부르면서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지만, 엄마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장면은 그렇게 지나간다. 은희가 실수로 문을 헷갈린 것에 대한 어떠한 인과관계도 설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기에 연결성 있는 설명도 어렵다.

 

둘째, <벌새>는 장소의 예외성을 보인다. <벌새>는 중심에서 벗어난 변두리 공간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즉, 예외적인 장소들이 오히려 인물들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들로 탈바꿈 되는 것이다. 본래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순간들로 구성하고, 중심 사건을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벌새>는 이러한 전형적인 중심적 장소를 벗어나, 예외적인 장소에서 중요한 사건을 다룬다.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던 변두리, 예외적, 주변적 사건들이 결국 연결되어 한 개인의 중요한 역사로 각인되는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에 대한 이야기도 교실이 아닌 복도에서 시작된다. 은희의 아픔과 치유의 성장 과정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공간도 중심지인 학교가 아니라 변두리 한문학원이다.

 

셋째, <벌새>는 시간의 격차를 새긴다. 시간의 격차는 ①장면의 공백이나, ②동시간성의 거부, ③감정의 발현에서 나타난다. ①장면의 공백은 어색하지 않은 채로 보존된다. 인물 간의 대화가 직접적으로 들리지지 않거나,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을 카메라의 시선 만이 존재하는 침묵 상태로 보여주더라도 그 공백은 되려 미묘한 감정을 유발하는 힘으로 작용할 뿐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애써 공백을 채우기 위해 대사를 집어 넣기보다, 존재와 시간의 격차를 새겨둠으로써 카메라의 시선 속에서 공백을 그저 보존하는 것이다. 삼촌이 방문한 뒤의 고요한 은희의 집을 카메라 만이 응시하고 있지만, 대사와 인물이 존재하지 않음으로서 카메라 시선이 주는 효과가 증폭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의 공백으로서의 시간의 격차는 일반적으로 달성해야 할 ②동시간성도 거부한다. 즉,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해야 한다는 동시간성의 원리를 깨고, 동시간성이 애초에 달성할 수 없던 것으로서 묘사된다. 결국 물리적으로만 동시간성일 뿐, 정서적으로 동시간성이 아닌 것이다. 또한 ③감정의 발현이 완전히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는 점도 시간의 격차와 관련된다. <벌새>에는 장면마다 잉여로서의 찌꺼기가 남아있다. 앞 장면에 해소되지 않았던 감정이 다른 장면에서 불현 듯, 아주 뜬금없이, 엉뚱한 곳에서 해소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의 격차를 두고 감정을 담아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맥락의 장면에서 ‘툭 터져버린 듯이’ 감정을 묘사하는 기법이기 때문에, 그 감정의 발현에 대한 원인은 예측만 가능할 뿐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이는 아빠가 병원 대기석에서 엉엉 울기 시작한 것, 오빠 대훈이 가족 식사자리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것에서 나타나고 이 울음에 대한 원인은 관객이 예측하게끔 내버려 둔다. 아빠가 병원 대기석에서 울었던 것은 은희의 혹 때문이 아니라 이전의 부부싸움에서 비롯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빠 대훈이 식사 중에 갑자기 울었던 것도 성수대교 붕괴 사건에 대한 슬픔인지, 수희의 생존에 대한 안도감인지, 은희를 때린 것에 대한 죄책감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예측만 가능할 뿐이다.

 

넷째, <벌새>는 의외적인 방법으로 위로한다. 위로가 필요한 대상에게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전후 사정을 묻고, 함께 조언하며 울어주는 전형적인 위로 방식이 아니다. <벌새>의 위로 방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려깊게 나타난다. 처음에는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되었던 위로가, 또 어떨 때는 조용하고 강인한 방식으로 “맞서 싸워”라는 직선적 메시지를 전달한다거나, 혹은 위로해야할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 가사가 의외의 유머로서 작용하여 단단하고도 담담한 위로로 나타나는 것이다. 위로의 중심에는 단언컨대 한문 선생님 영지가 존재한다. 연지 선생님은 은희가 오빠한테 맞았다는 괴로움을 묵묵히 들어주며 은희에게 “누구라도 너를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라는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면서, 은희와 지숙에게 ‘잘린 손가락’ 이라는 노동 가요를 들려주며 그 노래의 담담한 톤을 활용하여 은희를 위로한다. 의외의 방법이 모든 것을 괜찮다고 위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관점에 입각했을 때 <벌새>의 모든 장면들은 그 자체적으로 존재하여 생기를 발산한다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장면들이 하나의 지점으로서의 힘을 가져 전체와 다채롭게 어울리면서 <벌새>라는 영화적 풍경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은희의 시선에서 볼 때 이해되지 않는 모든 사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영화 안에서 존재하고, 은희의 시선이 우리의 시선과도 묘하게 합일을 이루면서 장면 마다 적극적으로 감정적 개입을 시도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벌새>가 남긴 찌꺼기들로 인해 끊임 없이 영화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벌새>는 매 장면마다 명확하게 포획되지 않고, 깔끔하게 정의되지 않는 감정의 잉여로서의 찌꺼기를 남기는데, 이러한 찌꺼기의 정령들이 유발한 해소되지 않는 감정들은 관객인 우리에게 치밀하게 다가온다. 그 덕에 온갖 감정들은 아주 순수한 위로와 생생한 묘사로서 전달되고, 각 장면들의 틈새에 관객이 개입할 여지도 남긴다. 그렇게 되면 관객은 나름의 상상력을 통해 <벌새>에 더욱 밀착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벌새>의 연출은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스며들게 된다.

 

<벌새>의 새로운 실험들은 가히 성공적이다. 김보라 감독의 추후 영화들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벌새>가 스며든 여운이 참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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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벌새>는 장면 간의 연결성이 끈끈하지 않다. 본래 영화는 인관관계에 따라, 뒷 장면이 등장하면 앞 장면이 해소되면서 지워져 간다. 즉 A장면이 나오고 인과관계로서의 B장면이 등장하면 A장면이 깔끔하게 지워지며, 다시 C장면이 등장하면 B장면 역시 지워진다. 하지만 <벌새>가 시도한 실험은 다르다. 장면 간 연결성이 끈끈하지 않기 때문에, B장면의 등장에도 A장면은 살아 숨을 쉴 수 있고, C장면의 등장에도 역시 B장면은 오롯이 존재할 수 있다. <벌새>는 모든 장면들을 아주 생생하고 치열하고 철저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이전의 장면들이 지워질 수 없고,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벌새>에서 은희는 엄마를 부르면서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지만, 엄마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장면은 그렇게 지나간다. 은희가 실수로 문을 헷갈린 것에 대한 어떠한 인과관계도 설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기에 연결성 있는 설명도 어렵다.

둘째, <벌새>는 장소의 예외성을 보인다. <벌새>는 중심에서 벗어난 변두리 공간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즉, 예외적인 장소들이 오히려 인물들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들로 탈바꿈 되는 것이다. 본래 인간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순간들로 구성하고, 중심 사건을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벌새>는 이러한 전형적인 중심적 장소를 벗어나, 예외적인 장소에서 중요한 사건을 다룬다.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던 변두리, 예외적, 주변적 사건들이 결국 연결되어 한 개인의 중요한 역사로 각인되는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에 대한 이야기도 교실이 아닌 복도에서 시작된다. 은희의 아픔과 치유의 성장 과정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공간도 중심지인 학교가 아니라 변두리 한문학원이다.

  

전소현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객원취재팀 기자단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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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2.01.2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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