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램이 아닌 랜디로 살아가는 법

대런 애러노프스키,「더 레슬러」

조윤정 | 기사승인 2022/02/17

더 램이 아닌 랜디로 살아가는 법

대런 애러노프스키,「더 레슬러」

조윤정 | 입력 : 2022/02/17 [13:30]

[씨네리와인드|조윤정 리뷰어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딱 두 편 봤는데, 하나는 『블랙스완』이었고 하나는 『더 레슬러』였다. 이 때문에 '더 레슬러'를 본 뒤 감독에 대한 편견아닌 편견이 더 확실해졌다. 미장센을 활용해서 음침한 분위기를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감상은 원래 있었지만,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개인적으로 예술에 대한 깊은 애증을 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예술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관련 된 일대기 영화에서 공연 장면은 보통 작품의 가장 화려한 피날레를 위해 연출 되는데, 블랙 스완의 '니나'가 추는 발레는 대부분이 시련에 가깝고, 영화를 전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니나의 트라우마와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더 레슬러 역시 비슷했다. 블랙 스완이 유명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니나의 노력에 대한 얘기였다면 더 레슬러는 이미 퇴물 레슬러가 되고만 '랜디'의 역전기에 가까운 내용이다. 사실 줄거리를 봤을 때까지만 해도 신파에 가까운 내용이 아닐까 하고 억측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와 자식이 있으며 한때는 굉장히 유명했던 운동선수가 역전을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는 클리셰에 가까울 정도로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이 대런 애러노프스키인 이상 영화는 절대 클리셰에 가까워지지 않는다.

 

▲ 영화 <더 레슬러>(2008) 스틸컷.  © NEW

 

유명했던 레슬러 선수인 랜디의 재기를 담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작중에서 그가 유명했던 시절의 경기 영상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랜디의 과거는 영화의 가장 첫 장면에서나 비중 있게 다뤄진다. 그의 경기가 촬영된 수많은 잡지와 경기 티켓, 관중들의 함성은 채 2분을 가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 이후로는 다른 레슬러에 의해서만 언급되거나, 이웃집 아이가 구식이라고 비웃는 게임 비디오 영상으로나 재현될 뿐이다. 감독은 영화 내내 랜디 더 램이라는 최고의 프로레슬러는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킨다. 그러나 랜디는 이 사실을 영화의 마지막까지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끝없이 절망하고 결국 죽음을 결심하며 링 위로 올라간다. 모든 관계가 망가지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링 위에 서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상술했듯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예술 자체의 비극을 그린 것이 아닌 인물의 연대기를 훑으며 그를 파멸로 치닫게 하는 영화는 많지 않을 것이다.

 

▲ 영화 <더 레슬러>(2008) 스틸컷.  © NEW


2000년대의 영화가 으레 그랬듯 더 레슬러는 무엇보다도 사실적이다.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 같이 흔들리는 핸드 헬드 기법이 자주 나온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미술이 무엇보다도 디테일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첫 장면에 나오는 잡지나 티켓 디자인의 디테일부터가 남다르다. 더 램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랜디 로빈슨은 영화 속에서 실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위해 랜디가 머무르는 공간들은 모두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이다. 미술 팀은 그가 거주하는 트레일러 파크나 대형 마트, 레슬링 경기장 전부를 현실에 있을 법한 공간처럼 꾸며놨다. 공을 들인 로케이션 선정으로 인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랜디라는 사람이 정말 실존하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랜디를 연기한 배우가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스타, 미키 루크라는 점 역시 주목할만하다. 과거의 화려한 배우로써 인기를 누렸던 미키 루크는 성형수술의 부작용과 비극적인 개인사때문에 대중들에게 잊혀질 뻔했다. 그러나,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보다도 사실적인 연기를 소화해내며 대중들에게 재차 증명받았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랜디와 미키 루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 영화 <더 레슬러> (2008) 스틸 컷.  © NEW

 

영화 속에서 랜디는 종종 뒷모습으로 등장하곤 하는데랜디가 레슬링을 포기하고 식료품점으로 처음 걸어 들어갈 때  박수 소리와 함성이 효과음으로 등장한다. 꼭 레슬링 경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함성은 랜디가 정육점의 스트립 커튼을 열어젖힘과 동시에 바로 사라진다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기도 한데감독이 참 잔인할 정도로 연출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처럼더 레슬러는 영화 내내 랜디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과연 더 램이라는 과거의 명성과 레슬러라는 직업을 떼놓고도 랜디는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랜디의 차에는 항상 그의 선수 시절 액션 피규어가 달려있다더불어 피규어의 뒷모습을 잡는 장면 역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나는 이 액션 피규어 소품이 운전자들이 차에 걸어놓는 십자가나 종교용품과 매우 비슷한 의미가 있다고 있다고 생각했다대런 애러노프스키가 무신론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랜디가 믿는 것은 그 어떤 신이 아닌 과거의 자기 자신더 램일 것이다. 

 

▲ 영화 <더 레슬러>(2008) 스틸컷.  © NEW


그리고 이 피규어는 결국 그가 사랑하는 팸에게 전해진다. 개인적으로 팸의 스트리퍼라는 직업과 랜디의 레슬러라는 직업이 굉장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는데,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둘 다 평소의 옷을 벗고 무대용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랜디는 링 위에서 더 램으로, 팸은 캐시디로 변한다. 그들은 무대 아래의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 하며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몸소 보여줘야만 한다. 다만, 팸은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 직업을 선택했지만 램은 직업 자체가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토론 도중 레슬링 무대에는 관객과 레슬러 사이에 링이라는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그들은 하나가 되지만, 캐시디의 무대에는 당장 누가 올라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유롭다. 그러나 관객과 캐시디는 무대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굉장히 공감이 갔다. 결국 이러한 차이 때문에 팸은 랜디의 경기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간 것이 아닐까 싶다. 랜디는 결국 더 램으로 남았고, 그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과 함께 홀로 링 위에 남았다. 영화 속에서의 경기 장면이 모두 연출이 아니라 실제로 레슬링 선수들과 경기를 치르게 하고 이를 촬영한 것이라는 비화를 알게 된 이후에는 램이 마지막 기술을 사용하는 장면이 굉장히 복잡 미묘하게 다가왔다.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랜디의 표정을 한동안 잊기가 어려웠다.

 

▲ 영화 <더 레슬러> (2008) 스틸 컷.  © NEW

 

사실, 이 영화가 블랙 스완 전에 나온 영화라는 것이 사실 믿기 어려웠다. 블랙 스완을 먼저 봤던 탓일까, 더 레슬러에서도 표현주의적인 연출이나 트라우마, 혹은 불안 등의 어두운 심리묘사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쯤이 하나는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도 더 정적이고 담담하게 흘러가서 놀랐다. 감독이 레슬링에 대한 애정을 갖고 만든 터라, 감독의 개성보다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예술인의 파멸이라는 소재를 전형적이지 않게 다뤘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랜디는 아버지, 연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고 더 램으로써 살아가길 선택했다. 이 때문에 랜디는 무대에서 죽었고, 그는 더 램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많은 연극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죽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것처럼, 무미건조한 개인의 삶보다는 화려한 예술인으로서의 자아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햄릿의 고뇌처럼, 죽느냐 살아가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과 창작이 현실에 기반을 뒀듯, 삶은 지루해 보일지라도 나름의 즐거움을 품고 이어진다. 그러니, 비록 지금의 내가 초라해 보일지라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보람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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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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