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사건번호처럼 연결된 타인의 삶

「공포분자」(1986), 에드워드 양

이하늘 | 기사승인 2022/02/26

일련의 사건번호처럼 연결된 타인의 삶

「공포분자」(1986), 에드워드 양

이하늘 | 입력 : 2022/02/26 [20:16]

[씨네리와인드|이하늘 객원기자한 남자가 총을 맞은 채 거리에 쓰러져있다. 파열음이 점점 사라질 때쯤 이전과는 달라진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띈다. 우연한 사건은 평범하던 사람들의 삶에 비집고 들어가 무참히 흔들어놓는다. 이 작품은 <타이페이 스토리>(1985),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과 함께 에드워드 양의 타이페이 3부작으로 불린다. 대도시 젊은이들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담은 이 작품들은 감각적인 묘사와 사건의 생략이 주를 이룬다. <타이페이 스토리>는 미국에 가는 문제로 갈등하는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표면적으로 다루지만 그 안에는 대만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타이페이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도시 안에서 스스로 고립되고 상처를 받는 젊은이들의 특유의 모습은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 <공포분자>(1986)와 합류한다. 곧이어 도시에는 공포의 총성이 울린다. <타이페이 스토리>의 수첸과 아룽이 주울분과 이립중이 되어. 

 

▲ 공포분자(1986)  © 중영고분유한공사

 

연기가 눈앞을 가려 포착되지 못한 진실 

 

LP 판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어둠이 내린 밤,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노래를 듣는 여자. 다리를 다친 여자, 슈안의 어머니이다. “친구들이 내게 물어. 내 사랑이 진실한지 어떻게 아냐고.” <Smoke gets in your eyes> 노래 속 가사는 말한다. 이후 이어지는 장면은 커플이 싸우는 장면이다. 노래는 계속 흘러나오고, 흑백 사진을 발견한 여자는 남자에게 화를 낸다. 본 기사는 영화가 극을 진행하는 방식처럼 교차편집의 방식을 차용해 작성하려 한다. 다시 영화의 오프닝으로 돌아가자. 앞서 말한 커플이 나온다. 평화롭게 책을 읽고 각자의 일상을 보내는. 이 커플과 주울분은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영화는 교차편집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음새를 만들어낸다. 주울분 역시 이립중과 결혼을 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프닝의 남녀와 주울분과 이립중의 모습은 거울의 반사된 면이 동일하게 보이는 원리처럼 일치한다. 탕- 다시 총소리가 울린다. 영화의 타이틀이 뜨는 최초의 장면으로 돌아간다. 내러티브의 전개는 불연속적이고 어딘가 연결고리가 끊어져있는 듯 보인다. 오프닝에 보여준 남자, 사진가 창은 카메라를 들고 총성이 들려온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다리를 다친 여자를 목격한다. 프레인 안에 다리를 다친 여자의 생생한 표정이 담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투쟁하는 듯한 모습. 그저 행동을 멀리서 관찰하고 제시할 뿐이다. 연관이 없는 것 같은 사건들은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일련의 사건번호처럼 절묘하게 연결된다. 카메라 안에 담긴 다리 다친 여자의 모습에 창은 빠져든다. 셔터를 눌렀던 그 순간을 계속 복기하며.

 

주울분과 이립중 사이에는 반복된 일상과 권태로움이 존재한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다리를 다친 여자의 전화다. 반복적으로 울리는 전화벨은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카메라는 전화선을 천천히 따라가 전화를 받는 주울분의 얼굴에 다다른다. 여자는 주울분의 남편인 이립중을 찾고, 주울분에게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주소를 알려주지만, 이내 말을 끝마치지 않고 끊어버린다. 전화를 마친 주울분의 표정은 이전과 조금 달라져있다. 그리고 프레임 안에서 사라지는 것을 선언한다.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립중은 아내의 실종에 당황한다. 아내가 글을 쓰러 떠난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예측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울분은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관객들 역시 사건들의 공백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집으로 돌아와 책장을 정리하는 주울분은 이립중에게 말한다. 글을 접고 이사를 나가겠다고. 이때 카메라는 풀샷으로 부부를 포착한다. 바로 이어지는 컷에서 식탁에 앉아있는 이립중의 모습을 미디엄 숏으로 지속해 보여준다. 영화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상대의 반응 숏을 제거하며 규칙을 깨버린다. 또한 이립중과 주울분이 있는 공간 역시 부엌과 식탁으로 분리하며, 감정의 단절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주울분의 롱테이크는 1분 이상 지속되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약간의 허무함이 배어있다. 대사와 사건을 생략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한 틀이다. 관객들은 약간의 의문을 품으며, 영화를 보게 되지만 이내 이것이 영화를 진행하는 방식임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은 흔히 서사로 분석하는 것이 아닌 장면들 간의 호흡을 따라가는 것이라 영화평론가들은 말한다. 긴 호흡들 속에서 캐릭터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그저 영화를 보는 것. 비록 연기가 눈앞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지라도. 

 

▲ 공포분자(1986)  © 중영고분유한공사

 

▲ 공포분자(1986)  © 중영고분유한공사

 

프레임 안에 담긴 공포의 얼굴 

 

프레임 안에 누군가의 모습을 담는 카메라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방식과 더 가깝다. 그에 반해 소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다 쓰는 방식이다.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연결 짓고, 내 안의 어떤 것을 차용해 옮겨 적는다. 카메라와 소설은 너무나도 다른 방식인 것 같지만 포착을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사진을 찍는 남자와 소설을 쓰는 주울분은 거울처럼 닮아있다. 다리를 다친 여자, 슈안을 프레임 안에서 포착한 이후로, 창은 그녀를 만났던 공간에 암실을 만든다. 주울분 역시 슈안이 걸었던 전화로 인해서 삶의 균열이 생긴다. 우연한 사건들은 연결되어 삶의 중심부에 들어와 뒤흔든다. 영화의 제목, 공포분자에서 분자는 ~를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직역하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되는 것. 하지만 그 공포는 우연이 아닌 내재된 불안과 의심이 증폭되어 폭파하는 것이다. 슈안의 얼굴과 전화가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이라고 해도, 창과 주울분이 그 공포에 반응한 것은 잠식되어 있던 두려움이 깨어났기 때문이다. 

 

창은 자신이 찍은 슈안의 사진을 암실에 조각별로 붙여놓는다. 창의 이상한 행동은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슈안과 사랑에라도 빠진 것일까. 주울분 역시 마찬가지다. 전화를 받고 난 이후의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기에, 관객들은 그저 유추할 수밖에 없다. 캐릭터들의 감정이 단편 소설처럼 나뉘어 있기에.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주울분의 소설 ‘결혼 실록’은 평범했던 한 부부에게 익명의 전화가 걸려오고, 공포와 의심의 불씨가 되어 남편이 자살에 이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 속 내용은 이립중과 주울분의 부부 생활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 영화의 엔딩에서 이립중은 경찰인 친구의 집에 방문하고 어떤 꿈을 꾼다. 하지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또한 꿈을 꾸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립중은 결혼 생활의 종결과 함께 직장 내에서도 승진이 누락되며, 이에 대한 분노를 상사와 주울분의 내연남을 찾아가 총격을 하며 표출한다. 급작스러운 전개 속도에 놀란 것도 잠시 이것이 꿈이나 상상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한다. 주울분이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깨어나는 컷이 바로 뒤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혼란에 빠진다. 얽히고 설킨 이야기의 구조 속, 이제 이립중은 빠져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민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친구의 집 욕실에서 자살을 한 이립중의 머리는 욕조에 기대어 있고 그로 인해 피는 욕조에 받아진 물로 함께 떨어진다. 교차편집으로 주울분을 비추는 카메라는 이제 다시금 공포의 속삭임을 한다. 아까 꾸었던 꿈속의 꿈의 주체가 주울분인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헛구역질을 한다. 그리고 영화는 마무리된다. 우리가 흔히 공포영화를 보면, 무언가 지속적으로 나타나 의심을 만들고, 두려움을 조성하는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공포분자>의 내러티브는 지속적으로 관객들에게 이야기의 생략을 통해 공포를 조성한다. 캐릭터들이 어떤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예측이 어렵게 함으로써. 

 

▲ 공포분자(1986)  © 중영고분유한공사

 

“그날은 봄의 첫날이었다. 계절을 이해한다면 변화는 윤회의 반복일 뿐, 올 봄은 여러 해와 다르지 않았다.” 영화의 초반부 소설을 쓰던 주울분의 내레이션이다. 봄은 만물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꽃이 피어나고 지고를 반복한 이후에 또다시 돌아온 계절. 앞서 말한 한 남자가 죽은 타이페이는 이립중이 죽음과 닮아있고, 이는 타인과 나의 인생은 다른 듯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포분자>가 에드워드 양의 타이페이 3부작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타이페이라는 주요 장소가 드러났기 때문이 아니라, 도시 자체가 지닌 외로움, 공허함, 공포를 캐릭터에게 투영해서 표현했기 때문이다. <공포분자>의 주울분과 이립중, 창과 슈안 모습은 <타이페이 스토리> 안의 아룽과 수첸처럼 또 다시 변화할 것이다. 도시의 깊은 곳에 내재된 공포는 이제 타인과 나의 삶의 경계를 허물고 침투했고, 다시금 형체를 바꿀 준비를 마쳤다. 주울분이 받은 익명의 전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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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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