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척점 시네마 | 중앙역과 한국을 닮은 브라질의 현대사

류나윤 | 기사승인 2022/03/02

대척점 시네마 | 중앙역과 한국을 닮은 브라질의 현대사

류나윤 | 입력 : 2022/03/02 [12:06]

About | 한국에서 정확히 열 두시간 차이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로 파악하기 위해 기획한 시리즈브라질 영화를 탐험한 기록입니다.

 

 

[씨네리와인드|류나윤 리뷰어개인의 경험은 모두 다르지만, 개인이 속한 사회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에 의해 공통된 감정과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50년대 전쟁, 70년대 독재와 급성장, 80년대 민주화, 90년대 경제 붕괴 등을 겪으며 공통으로 형성된 국민성이 존재한다. 개인이 역사를 지나오며 있었던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을 수는 없지만, 사건을 경험한 타인을 공감하며 일종의 집단의 성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난 시리즈에서 <내 작은 프랑스인은 얼마나 맛있었나>를 통해 브라질이라는 국가가 형성된 기원에 관해 알아봤다면, 이번에는 브라질 국민성의 근원, 현대사 이래로 브라질은 어떤 변화를 겪었고, 가장 전형적인 국민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볼 예정이다.

 

시작 - 90년대 브라질의 현실

 

영화의 도입에서 주인공인 ‘도라’와 ‘조주에’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리우데자네이루 중앙역을 쉴 새 없이 오가는 인파다. 리우는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이기도 하며, 가장 빈부격차가 심각한 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70년대에 많은 사람이 지방에 가족을 둔 채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모였다면, 브라질에서는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새로운 삶과 일거리를 찾아 리우로 왔다.

 

그렇지만 도라와 도라가 하는 일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런 ‘새로운 삶’ 따위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관객은 인식하게 된다. 도라가 하는 일은 중앙역에 책상을 펼치고 앉아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편지를 대신 써 주는 것이다. 이 때 영화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다. 문맹이 사회에 만연함을 직접 확인해주는 것이다. 글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일거리는 없을 것이다. 부산하고 활기찬 역사 내부의 모습과 편지를 대필한다는 도라의 직업적 설정은 브라질에서의 삶이 쉽지 않음을 알려준다.

 

 

조주에(Josué), 아버지의 부재와 아동 인권

 

도라와 조주에가 처음 만나는 것 역시 역사 내 도라의 일터에서다. 당시 조주에는 젊은 어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어머니가 쓰는 편지가 ‘제주스(Jesus)’라는 이름을 가진 양아버지에게 보내는 것임이 드러나는 순간 조주에에겐 이미 한 번 아버지와의 이별, 그러니까 가정의 붕괴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복잡한 현대사 속에서 많은 가정이 그랬듯이, 브라질 역시 ‘아버지의 부재’로 시작되는 가정의 붕괴가 많이 일어난 역사가 있다. 그것이 먼 지역으로의 파견 때문이든, 군사 정권 중에 실종되었기 때문이든, 혹은 그저 술과 사랑 때문이든 말이다.

 

전통적인 가정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감시자이자 법을 만드는 사람의 부재를 의미한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과 보호자의 부재 속에서 아이들은 쉽게 버림받는다. 이러한 사회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에피소드는 도라가 조주에를 ‘보호시설’에 팔아넘기는 장면인데, 사실상 조주에가 간 곳은 보호시설이 아닌 아동 인신매매가 일어나는 장소였다는 걸 알게 된 도라가 아이를 다시 데려오는 것으로 영화의 초반부가 마무리된다. 영화 초반에 조주에는 잘 웃지도 않고, 또래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이 모습에서 경제적으로 힘든 삶에 아이를 희생하는 일이 많았던 사회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

 

도라(Dora), 가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인물

 

도라 역시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다시 만났지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친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남아있고, 이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뚝뚝하고 강인한 여성으로 자라게 되었다. 도라는 결혼하지도 않고 그저 친구(혹은 동반자)와 살아간다. 이런 도라의 배경은 참 흥미로운데, 당대의 사회상에서 이미 어머니-아버지, 그리고 자식들로 구성된 구시대적인 가족 정상성은 부서지고 다양한 가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라는 가족이라는 집단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인물이다. 이미 여성 동반자와 함께 살고 있었고, 어머니를 잃은 조주에를 위해 가족을 찾아주고, 역시 아버지의 부재를 안고 살아가는 조주에의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와 그를 이어주기 때문이다. 도라에게 가족의 해체와 구성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렵게 찾아간 제주스(Jesus)의 집에 조주에의 아버지가 없다면 얼마든지 자신과 함께 살자고 제안할 수 있는 인물이다.

 

 

로드무비 - 브라질 국민성의 근원, 가뭄과 종교

 

영화 <중앙역>의 감독인 월터 살레스(Walter Salles)는 로드무비를 잘 만드는 감독이다. 이는 그의 다음 작품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앙역>에서도 도라와 조주에의 여정은 단순한 여행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조주에의 양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곳은 북동부 페르남부쿠 지역. 브라질의 북동부는 덥고 건조한 기후적 특성과 가뭄의 심화로 척박한 환경으로 많이 묘사된다. 실제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많은 사람이 북동부 가뭄의 심화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가 있는 남동부로 이주해 왔다. 마치 한국의 경제 발전 시기에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서울로 터전을 옮겼듯이 생존을 위한 이주는 브라질 현대사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있다. 브라질은 방대한 국토에 비해 철도 시설이 잘 정돈된 편은 아니어서, 대부분 이런 이주민들은 트럭 하나에 모든 대가족의 짐을 실어 밤낮으로 이주했다. 이는 여행 경비를 다 쓴 도라와 조주에가 트럭 운전기사의 차를 얻어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떠올릴 수 있다. 브라질 역사와 정반대로 이동하는, 오지 시골로의 여행은 브라질 관객으로 하여금 브라질의 근원은 무엇인지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영화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종교다. 기본적으로 브라질이 가톨릭 국가인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브라질의 국민성에는 ‘믿음’이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의 곳곳에 상징적으로 숨어 있다. 조주에와 도라가 고된 여정을 감수하면서까지 만나러 가는 사람은 ‘제주스(Jesus, 신)’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다. 이 제주스라는 남성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편지를 써 자신이 생계를 부양하기 위해 일을 찾아 떠났으며, 아들들에게 항상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이야기할 뿐이다.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신 건 맞는지, 정말로 여전히 가족을 사랑하는지 알 수는 없다. 그저 그의 존재를 믿은 채 남은 생을 만들어가야 할 뿐이다. 종교적인 은유는 두 주인공이 여행길에 만나는 트럭 운전기사, 종교 집단, 그리고 ‘세상의 끝’에 도착해서 만난 종교적 행렬에서도 나타난다. 도라와 조주에가 갈등을 겪은 뒤 ‘조주에의 무릎에 누운 도라의 모습(몇 브라질 평론가들은 ‘거꾸로 된 피에타’라고 명명했다.)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등 영화 후반부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종교적 색채를 확인할 수 있다. 브라질의 근원으로 접근하는 감독의 방식이다.

 

마무리 – 90년대 브라질과 세계의 평가

 

<중앙역>은 ‘그다지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커플(도라, 조주에)’임에도 세계의 인정을 많이 받은 영화다. 이는 브라질의 부조리한 현실을 노골적이지 않게, 설득 가능한 두 인물의 이야기에 잘 녹여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평론가들이 <중앙역>을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기며, ‘비전문 배우’와 실제적인 대사로 대표되는 리얼리즘적 특성은 이후 2000년대 초반에 <시티 오브 갓>과 같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제작된 '파벨라 무비(Favela Movie: 브라질 빈민촌인 파벨라(Favela)를 배경으로 하는 리얼리즘 영화)'와 같이 브라질의 사회적 현실을 그리는 영화로 계보를 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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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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