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서사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

「살인의 추억」(2003)과 「미씽 : 사라진 여자」(2016)의 비교

최지인 | 기사승인 2022/03/02

추리 서사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

「살인의 추억」(2003)과 「미씽 : 사라진 여자」(2016)의 비교

최지인 | 입력 : 2022/03/02 [19:35]

[씨네리와인드|최지인 리뷰어]

 

▲ '살인의 추억'(좌)과 '미씽 : 사라진 여자'(우) 포스터.  © 이언희, 봉준호

 

1. 비교 대상 선정 이유

 

「살인의 추억」과 「미씽」은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반대의 면모를 가진 작품들이다. 우선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시대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3년 개봉작인 <살인의 추억>은 독재 정권이 자리 잡았던 80년대에 실제 일어났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다. 영화는 당시의 폭력적이고 비과학적인 방식의 수사, 민주화 운동 진압을 위해 본래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찰, 민방위 통행금지 시간 동안 범행이 이뤄지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80년대 공권력의 과잉과 무능함을 지적한다. 그로부터 약 15년 후, 2016년 개봉작인 <미씽>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의 현실과 성매매 문제, 그리고 여전히 한국의 농촌에서 이뤄지는 매매혼으로 인한 이주민 여성의 문제를 그리며 2010년대 한국 사회의 여성문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차이점이, 이 두 개의 작품을 추리 서사 안에서 완전히 다른 갈래로 갈라 놓았다. 바로, 성별에 따른 캐릭터의 양상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려는 ‘남성’ 형사들이 유력 ‘남성’ 용의자들을 쫓지만 <미씽>에서는 쫓는 쪽도, 쫓기는 쪽도 모두 여성에 해당한다. 단순히 주인공들의 성별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각각의 작품이 여성과 남성을 그려내는 방식 자체가 상이하기 때문에, <살인의 추억>과 <미씽>의 비교가 한국 2000년대 초반의 추리 서사와 2010년대 이후의 추리 서사가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내고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2. 본론 

 

먼저 <살인의 추억>은 아주 대비되는 수사 방식을 가진 두 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중 한 명인 ‘박두만’의 수사엔 과학이 없다. ‘무당 눈깔’이라고 불리는 그는 얼굴을 보면 범인인지 아닌지 알아맞힐 수 있다고 자부하는, 느낌과 감각으로 수사하는 인물이다. 반면 ‘서태윤’ 형사는 증거를 모아 분석하고 추리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펼친다. 영화는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수사를 하는 두 형사가 각자의 방법으로 전력을 다했음에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결국 서로가 증오하던 서로의 방식을 닮아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형사들이 쫓는 범인이 남성이기에, 영화엔 수사의 대상이 되는 다양한 남성 용의자들이 등장한다. 피해자인 향숙이를 쫓아다녔다는 이유로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는, 사실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백광호’, 변태적인 성향을 가진 공장 노동자 ‘조병순’, 더 젊고 멀끔한 인상을 가진 ‘박현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날마다 라디오에 같은 노래를 신청한 장본인이자 ‘손이 곱다’라는 증언에도 일치했던 인물이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가 불일치하여 마지막까지 검거되지 못한다. <살인의 추억>속 남성 인물은 이렇게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 <살인의 추억> 스틸컷     © CJ Entertainment/Sidus Entertainment & Contents Group

 

그렇다면 <살인의 추억> 속 여성 등장인물들은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을까? 형태를 말하기 앞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여성 캐릭터의 비중 자체가 남성 캐릭터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성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여성은 이미 죽어있는 사체의 모습, 즉 피해자에 해당한다. 잔인하고 변태적인 수법으로 범인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여성의 모습은 영화 내에서 상당히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팬티가 머리에 씌워진 채로 손발이 묶여있는 시체의 모습이나, 질 속에 있던 복숭아 조각을 빼내는 모습 모두 말이다. 또, 그 모습들은 관객뿐만 아니라 작품 속 남성 형사들에게까지 당연시 관전된다. 피해자가 아닌 여성 캐릭터들은, 형사들 내 유일한 여성인 ‘권귀옥’과 박두만의 애인인 ‘곽설영’, 중학생 여자아이들, 피해자가 될 뻔했던 한 여성 인물 정도인데, 이들은 모두 작은 비중으로 등장해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작은 정보들을 조달 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 중 ‘권순경’은 같은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형사들의 커피를 타는 등 하는 일은 거의 비서나 다름없으며, ‘서태윤’에게 학교의 괴담을 알려주던 한 여자아이는 피해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살인의 추억> 속 여성 인물들은 피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인물, 부수적이고 대상화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 <살인의 추억> 스틸컷     © CJ Entertainment/Sidus Entertainment & Contents Group

 

그렇다면 <미씽>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은 어떤 모습인가. <미씽>도 <살인의 추억>처럼 투톱 체제의 영화이다. 한 명의 주인공은 한국의 평범한 워킹맘 ‘이지선’이다. 현재 남편과 이혼 소송 중인 그녀는 어린 딸아이를 돌보면서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양육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일해야 하고, 소송 까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고용한 중국인 보모 ‘한매’가 <미씽>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지선’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딸을 납치해 사라진 범인, ‘한매’를 찾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진행된다. 두 여자 주인공을 제외하고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에는 한 가지 특성이 부과되어 있는데, 그건 두 여자 주인공이 처한 비극적 상황에 일조했거나, 그 상황을 잘 드러내주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우선 지선의 전 남편이자 의사인 ‘진혁’은 아이에게 큰 애정이 없고 바람을 폈음에도 지선에게서 양육권을 뺏어오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고, 자신의 어머니(지선의 시어머니)를 보내서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는 등 지선을 곤란한 상황으로 내몬다. 아주 짧게 등장하는 지선의 회사 대표 또한, ‘내가 이래서 애 엄마들이랑 일하기 싫어, 돈 주고 지 자식들 사정까지 봐줘야 돼’라는 대사로, 워킹맘으로써 고군분투하는 지선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선을 도와야 하는 변호사와 경찰도 지선의 말을 불신하고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지선은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한매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컷     ©이언희

 

3. 결론 

 

우리가 ‘추리 소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탐정의 이미지들이 있는데, 그것의 대부분은 19세기 후반 영국 혹은 미국에 등장한 고전적 추리 서사에서 비롯한다. 그 고전 추리 서사 속 탐정과 범죄자는 항상 남성으로, 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으로 설정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남성은 이성적이고 공격적이며 여성은 감정적이고 수동적이라는 당시의 지배적인 성별 규범이 추리 서사의 탄생 시점부터 꾸준히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추리 서사는 남성 탐정의 재현을 통해 합리성, 용맹성 등과 같은 남성성에 대한 이상화를 시도한다.

 

물론 <살인의 추억>은 80년대를 배경으로 실재했던 사건인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이용했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피해자를 여성으로 설정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국 다수의 여성 캐릭터를 남성 탐정형 인물에 비해 부차적인 역할에 머무르도록 했고 여성 피해자를 다소 폭력적인 시선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고전적 성 이데올로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서사의 등장인물이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으로 치우친 채 유지되어 왔던 추리 서사에서 2010년대 <미씽>같은 작품이 등장했다는 것은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을까. <미씽>의 등장은, 더 이상 그 어떤 대중 서사의 장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 고정관념과,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강해졌다는 것의 반증이다. 점차 자라나고 있던 성평등 의식이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페미니즘’이라는 구체적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고발하고 여성들에게 주어졌던 사회적 억압에 대한 담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중 서사의 소비자들은 더 이상 피해자에 머물러있는 여성, 남성들에게 묶인 채 수난당하는 여성, 아름다운 외모로 남성의 환심을 사는 여성 캐릭터를 당연시 여기지 않으며, 시대에 발맞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를 원한다.

 

▲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컷     ©이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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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2.03.0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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