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스터들의 이상한 도덕률

영화 '킬러들의 도시'

노상원 | 기사승인 2020/07/17

갱스터들의 이상한 도덕률

영화 '킬러들의 도시'

노상원 | 입력 : 2020/07/17 [16:28]

[씨네리와인드|노상원 리뷰어] 켄과 레이는 대주교를 암살한 뒤 보스의 명령으로 잠적을 위해 벨기에의 작은 도시 브뤼주에 머물게 된다. 성당도 가보고 산책도 거닐며 조용한 관광도시의 경치를 느긋하게 즐기는 켄과 달리 레이는 관광도시 특유의 휴양스런 분위기를 못 견뎌 온 몸이 근질근질해 가만히 있질 못한다. 결국 브뤼주에 있는 동안 레이는 밖으로 나다니며 여자도 사귀고 사고도 치지만, 밤마다 그에게 엄습해 오는 죄책감은 어찌 할 방법이 없다. 사실 그는 대주교를 암살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어린 아이를 죽였다. 대주교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이 고해실 바깥에서 기도하던 소년의 머리를 맞춘 것이다. 레이는 아이를 죽였다는 사실에 매일 밤 괴로워한다. ‘킬러들의 도시(2008)’는 갱스터의 죄책감과 그 아이러니함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와 아이는 건들이지 말라” 느와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갱스터 들의 십계명이지만, 곱씹어보면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그럼 여자의 남편과 아이의 아빠는 건들 여도 된다는 것인가? 또 아이의 기준은 어떻게 정하나? 연적의 가정집을 습격하기 전에 호구조사라도 해서 “음, 이 집 장남은 18세가 넘었군. 죽여도 되겠어.” 하고 전부 쏴 죽인다던가 하지는 않을 텐데..

 

성인 남성인 타겟의 머리통에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으며 총알을 박아 넣는 대신 아이를 죽인 일에는 밤잠을 설치고, 타인의 피를 대가로 돈을 받는 일을 하면서 역사 깊은 브뤼주의 성당에서는 예수의 성혈 자국을 만져 보고자 하는 레이와 켄, 두 킬러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어떤 아이러니를 보여줌과 동시에 위와 같은 킬러들의 보편적 계율이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위선일 뿐 임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이들의 이 룰이란 것은 애초부터 여자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것은 생명 중시는 커녕 생명 경시에 가깝다.

 

여자와 어린 아이는 죽이지 말라는 갱스터들의 도덕률은 이들이 자신 안에 아직은 남아 있다고 믿는 최소한의 인간성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이상한 위선이다. 그런다고 그들의 손에 묻은 피는 지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브뤼주-잘못된 잣대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심판하는 연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극 중 켄과 레이가 중세의 그림을 보며 나누는 대화에서는 연옥에 대한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이들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브뤼주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린다(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무간지옥을 연상 할 수 밖에 없다.). 그럴 듯한 계율로 포장된 체계화된 폭력이라는 이상한 착각 속에 머물고자 해도, 결국 그들이 머물게 되는 곳은 연옥이다.

 

창작자가 등장인물들과 밀착되어 함께 사건을 겪어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가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만든이가 등장인물들로부터 떨어져서 관조하거나 내려다보는 느낌을 주는 영화가 있다. 마틴 맥도나의 '킬러들의 도시'는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관객과 캐릭터 사이에 확보된 그 거리 사이로 냉기어린 코미디가 스며든다. 이 영화가 구사하는 유머는 아주 냉혹한 일급 블랙 코미디로, 얼빠진 인물들의 재치 있는 대사와 모순적인 상황을 통해 주제의식을 더 선명히 드러낸다.

 

▲ 킬러들의 도시 스틸컷     ©영화사 시너지

 

작품의 유일한 흠은 국내 개봉명이다. 영화의 원제는 ‘In Bruges’ 다. ‘브뤼주에서’ 라는 간결하며 영화의 핵심과도 연관이 있는 제목을 누군가가 국내 배급과정에서 ‘킬러들의 도시’ 라는, 아마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를 의식한 듯한 제목으로 바꾸어 놓았다. 영화의 홍보를 위해서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더 나은 대안은 없었던 걸까? 관객수를 찾아보았더니 5만 4천명. 효과가 미미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나마 ‘브뤼주에서’가 아니라 ‘킬러들의 도시’라서 오만명이라도 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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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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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0.07.1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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