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관한 어떤 사랑

임채은 | 기사승인 2020/09/11

필름에 관한 어떤 사랑

임채은 | 입력 : 2020/09/11 [14:22]

[씨네리와인드|임채은 리뷰어]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카세트 테이프나 CD처럼 점점 없어져 가는 것들이 늘어갔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만은 지치지 않고 이어졌다. 1980년대 TV가 등장하며 영화의 종언을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영화는 아직까지 살아있고, 아메바처럼 계속해서 꿈틀거리며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태풍같이 휘몰아치는 OTT의 선전 속에서 극장도 아직 존재한다.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남아있기에, 극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있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와 극장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살펴보자.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1988,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스틸컷  © (주)안다미로

 

관음증 그리고 사랑. 이렇게 두 단어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도메크(올라프 루바젠코)은 연상녀 마그다(그라지나 자폴로스카)을 사랑하고 있다. 도메크는 맡은 편 건물에 사는 마그다를 매일 밤 훔쳐본다. 알람 시계가 울리면 급히 방에 들어가 망원경을 준비하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그녀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는 그녀를 계속 훔쳐본다. 그의 사랑은 조건문이 아니라서 그녀의 사랑을 바라지도 않는 것 같다. 불편한 내용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든다. 같은 관음증을 소재로 한 이창을 보며 느낀 것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다. 이 영화는 왠지 아주 가까이 있는 것 같은 이야기다.

 

도메크와 마그다를 비추고 있을 가상의 카메라를 180도 돌려보자. 영화관에서 스크린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캄캄한 밤 도메크가 망원경으로 마그다를 몰래 보았던 것처럼 우리도 어두운 극장에 앉아 스크린 속 인물들을 바라본다. 물론 몰래 보는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사실 영화는 관음증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스크린에 담긴 인물을 보지만 그 인물들은 우리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철저하게 보여지는 주체가 아니라 보는 주체로서 스스로의 자리를 마련하며 쾌락을 느낀다. 그리고는 안도한다. 1초에 24컷이 흘러가는 동안, 인물과 자신이 스크린에 그리고 객석에 붙잡혀 있는 상황에 대해.

 

 

시네마 천국 (1988, 주세페 토르나토레)

지금은 클릭 몇 번만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하지만 1940년대에는 영사기를 손으로 돌려야만 영화가 상영됐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상영기사인 알프레도(필립 느와레)가 일하는 영화관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의 곁에는 꼬마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가 자리하고 있다. 토토는 필름 토막만으로 그에 맞는 대사를 외칠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다. 그는 알프레도에게 영사기술을 배우고 카메라도 손에 쥔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 세상을 담고, 그것을 다시 영사기의 일정한 속도로 되감는다. 꿈을 찾아 떠난 그는 훗날 영화 감독이 되어 마을을 다시 찾는다.

 

 

▲ '시네마 천국' 스틸컷  © (주)왓챠

 

영화는 철저히 기계의 작용에 의해 도출되는 결과물이다.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인물의 시선을 담아내고, 영사기를 통해 영상을 재생한다. 우리는 그 기계들의 작용을 보며, 울고 웃고 떠든다. 요즘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코로나 시대 전까지 극장은 늘 붐볐다. 약속 장소로 제격이었고, 팝콘이나 콜라를 먹기도 하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활기찬 공간이었다. 즉 극장을 찾는다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사람이 있는 것, 극장을 찾는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시체들의 아침 (2018, 이승주)

이제 발랄하고 귀엽고 상큼하기까지 한 한국 단편영화를 보자. 영화광 성재(강길우)는 모아놨던 수많은 영화 DVD를 처분하기 위해 판매글을 올린다. 중학생 영화광 민지(박서윤)는 황급히 글에 반응한다. 성재는 모든 DVD의 일괄 처분을 원하지만 민지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아침’ DVD만 원한다. 낱장판매도 안 되고, 그렇다고 대여도 안 된다 하니 민지는 성재 집에 눌러 붙어 영화를 보기로 한다. 귀찮아 하던 성재지만, 무서운 것을 못 보는 민지에게 자신의 노하우까지 알려준다. 시선은 화면을 고정하고, 무서운 것이 나오면 호우!”라 외친다. 어느 새 두 사람은 함께 외치고 있다. “호우!”

 

 

▲ '시체들의 아침'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제공

 

우리는 영화를 보고 떠들기를 좋아한다. 극장의 불이 꺼지면 문화인이라는 족쇄는 우리를 꼼짝할 수 없이 묶는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순간 입에 쳐진 거미줄도 걷힌다. 가까이 있는 친구와도 떠들고, 부족하다면 각종 커뮤니티에 들어가 말을 얹는다. 혼자 느끼는 감정과 누군가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계속해서 떠듦으로써 유대인이 약속이 땅에서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영화에 대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영화는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게 하고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세상-의 매개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껏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사랑을 동력으로 우리의 꿈을 상영하는 영사기는 여전히 여러 마음 속에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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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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