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표현에 철학을 담은 성장형 감독, 백승기를 말하다

김준모 | 기사승인 2021/04/20

B급 표현에 철학을 담은 성장형 감독, 백승기를 말하다

김준모 | 입력 : 2021/04/20 [10:00]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나이 서른에 접어들어 무작정 영화가 찍고 싶어 도전한 감독이 있다. 데뷔작을 통해 천재 또는 괴짜로 주목받은 그는 두 번째 작품에서는 인류의 탄생을, 네 번째 작품에서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에 도전했다. 마니아층의 열혈한 사랑을 받고 있는 그, 백승기는 적은 예산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힘을 지닌 감독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표현에 있어서는 B급이지만, 그 나름의 철학으로 곱씹는 맛이 있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시절부터 친구들과 함께 영화 속 명장면을 패러디하는 UCC를 만들며 꿈을 키워온 그는 영화를 전공하지도, 따로 배워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2005C급 무비 제작소 꾸러기 스튜디오를 설립한 후 자신의 거주지인 인천을 중심으로 패러디 작품들을 만들어 온라인 상영관으로 소개하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기발하고 독특한 그의 아이디어에 마니아층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 '숫호구'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2012, 백승기 감독은 첫 번째 영화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공개하며 주목받게 된다. 그의 첫 작품인 <숫호구>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를 패러디 해 모태솔로 남자의 열등감과 희열을 담아냈다. 슬프게도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서른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해본 숫호구 원준을 감독이 스스로 연기하며 극적인 몰입을 더한다. 소위 말하는 연애에 있어 패배자 남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의 <전차남>, <모테키> 등이 보여준 남성 판타지처럼 보였던 이 영화는 아바타라는 소재를 만나 사랑에 있어 실존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묘한 시도를 선보인다. 원준은 아바타의 몸에 들어가 좋아하는 지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건 자신이 아닌 아바타라는 생각에 고민하게 된다. 이 고민은 조건 없는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에 있어 실존이란 무엇인가 하는 진중한 물음을 던진다.

 

이런 철학적인 면모는 B급의 느낌을 통해 가려진다. 나쁘게 보자면 주제의식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이런 표현이기에 이 작품에 제기될 수 있는 도덕적인 문제가 나오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다양성 영화가 지닌 다양성이란 측면에 잘 들어맞는 작품이었고, 공감과 웃음을 가져올 수 있는 이야기를 선보이며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감독백승기의 이름을 알렸다.

 

▲ '시발,놈'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숫호구><아바타>에서 표현의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면, 두 번째 작품인 <시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은 인류의 시초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제목이 시발(시발점 할 때의 그 시발이다)에 놈(최초의 인류를 의미한다)이 붙은 시발, 이다. 태초의 인류에 대해 이랬을 것이다라는 가정을 통해 현대에 내려오는 선사시대 유물과 유적, 성적인 행위의 정착 등이 어떻게 되었는지 상상력을 통해 보여준다.

 

이 작품부터 백승기 감독 영화의 주연은 손이용 배우가 맡게 된다. 전작 <숫호구>에서는 조연으로 출연했던 손이용은 감독의 학교 후배로 두 사람은 함께 그룹을 결성해 가수 활동을 한 적도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다. 현재는 백승기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손이용은 태초의 인류인 시발놈을 연기하며 다소 충격적인 분장과 행위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한 감독의 열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영화는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2015년 공개된 작품은 2016년에 개봉한다. 전작이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영화가 늦게 개봉한 이유는 재촬영 때문이다. 영화제 당시 백승기 감독은 내레이션이 없는 영화의 전개와 몇몇 부분이 부족하다 여겼고, 1년여의 기간 동안 재촬영과 편집을 통해 다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자칫 B급이란 표현 때문에 가볍게 보일 수 있는 영화이지만,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하고 연구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태초의 인류를 통해 그 실존의 뿌리를 찾아나서는 시도를 선보인 백승기 감독은 다소 의아한 세 번째 영화를 선보인다. <오늘도 평화로운>은 주성치 영화에 대한 향수를 지닌 백승기 감독의 작품처럼 보인다. 영화감독이 꿈인 영준이 중고나라에서 사기를 당한 후 범인을 잡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는 내용을 다룬 이 작품은 주성치식 코미디와 무술을 선보인다. 엉터리 중국어를 통해 그 질감을 살려낸다.

 

이 영화가 나오게 된 비하인드에는 실제 감독의 경험이 있다. <숫호구>가 자전적인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한 거처럼, <오늘도 평화로운>은 실제 중고나라에 사기를 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성치 영화에 대한 로망을 담아낸 것이다. 자신이 당한 사기에 복수하고 싶은 욕망이 영화적 상상력과 맞물려 예기치 못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백승기 월드는 네 번째 영화에서 위기와 마주한다.

 

▲ '인천스텔라'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인천스텔라>는 그 제목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를 패러디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집이자 영화의 공간이 인천에 이 영화의 제목을 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백승기 감독에게는 <인터스텔라>의 개봉은 일종의 위기였다. <시발, > 촬영 당시 SF 영화를 구상했고, 시나리오를 쓰던 중 <인터스텔라>가 개봉했다.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이 쓴 시나리오와 너무 흡사해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시도해 온 스타일이 패러디에 B급이 아니었다면 시나리오 전면수정 대신 택한 패러디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천시의 지원을 받아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를 시도한 이 영화는 SF 가족극이라 할 수 있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처럼 상실의 감정을 우주를 통해 포근하게 담아낸다. 여기에 대놓고 <인터스텔라>의 명장면들을 빌린 전개는 기발함이 돋보인다.

 

상업영화에서도 시도하기 힘든 SF장르인 만큼 CG의 측면에서 조잡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SF, 그것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시도한 건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백승기 감독은 정해진 예산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B급의 표현을 빌린다. 이 표현은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적은 예산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기에 적합하다.

 

백승기 감독의 아이디어는 공감과 기발함에서 온다. <숫호구>는 패배자 남성에 <아바타>, <오늘도 평화로운>은 중고나라에서 당하는 사기에 주성치 영화를 담아내며 낯설지 않은 느낌을 준다. 다만 패러디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시도라는 점, 저예산이 지닌 부족한 완성도가 지니는 한계가 느껴진다는 점은 백승기 감독의 영화가 마니아층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하는 아쉬운 지점이다.

 

그럼에도 백승기 감독의 영화를 기대하는 이유는 그가 보여주는 발전에 있다. <오늘도 평화로운>에서 보여준 현란한 카메라 워킹과 액션장면, <인천스텔라>에서의 CG 등은 맨몸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감독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돌에도 완성형이 아닌 성장형이 있듯 성장형 감독으로 작품마다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 차기작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 백승기 감독     ©(주)영화사 그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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