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사, 좋은 대화

잘 쓰여진 시나리오를 찾는 나만의 방법

이성현 | 기사승인 2021/04/30

좋은 대사, 좋은 대화

잘 쓰여진 시나리오를 찾는 나만의 방법

이성현 | 입력 : 2021/04/30 [10:04]

[씨네리와인드|이성현 리뷰어] 영화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답변을 내놓는다. 훌륭한 영상미부터 배우들의 연기 등 다양한 답이 나온다. 나에게 이 질문이 주어진다면 한 치의 고민 없이 '시나리오의 완성도'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화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고, 시나리오가 이야기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좋으면 명작은 몰라도 소위 말하는 ‘망작’은 나오지 않고, 시나리오가 나쁘면 아무리 나머지가 좋아도 명작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이런 말을 했다.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3가지가 필요하다. 시나리오, 시나리오, 그리고  시나리오.” 이외에도 수많은 명감독은 끊임없이 각본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오케이, 시나리오가 제일 중요한 건 알겠고, 잘 썼는지 못 썼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내 기준은 대화, 혹은 대사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을 생각해 보자. 시에는 화자가, 소설에는 서술자가 있다. 이들이 말하는 걸 통해 의도와 정서와 무언가를 찾아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시나리오는? 지시문이나 해설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는 글을 영상화하는 데에 주요한 목적이 있다. 그렇기에 완성작에서는 관객들에게 직접 설명해주지 않는다. 배우들이 말로 전부 녹여내야 한다. 즉 시나리오라는 글의 의도와 정서와 무언가는 전부 대사에 담겨 있기에 이를 분석하면 좋은 시나리오인지 판단하기 쉽고 용이하다. 사실 분석할 필요도 없다.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 가깝기에 머리가 분석하려 하기 전에 이미 마음이 받아들인다. 영화를 떼어놓고 생각해도 그렇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건 재미있다. 말하는 사람이 조리 있게 말할 때만 말이다.

 

그럼 어떤 식으로 조리 있게 말해야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좋은 시나리오로 인식되는지 알아보자. 영화와 상관없이 말 잘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나는 래퍼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연상된다. 래퍼는 꽂히는 가사를 통해 리스너들에게서 호응을 끌어내야 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오직 말로써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 두 직종은 공통으로 말을 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수많은 말 속에서도 결정적인 한마디를 통해 사람들을 휘어잡아야 한다. 래퍼들은 저 결정적인 한마디를 ‘펀치 라인’이라고 한다. 펀치같이 강력한 한마디라는 뜻이다. 관객들이 제일 흔하게 생각하는 좋은 대사의 조건은 펀치 라인처럼 강력한 대사 한마디다.

 

▲ 영화 <파수꾼>(2010)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파수꾼>(2010)에서 희준(박정민 분)과 동윤(서준영 분)이 기태(이제훈 분)에게 날리는 한방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셋은 친한 친구이지만 사소한 문제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기태는 희준을 하대한다. 그러던 중 희준의 “나도 너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하나도 없고.”에서 갈등의 국면이 급격히 전환된다. 애정 결핍이라는 기태의 치부가 드러나기도 한다. 후반부에서 동윤의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는 기태의 자살 동기에 정점을 찍어준다. 이후 동윤의 회상 장면에서 “너만 알아주면 돼.”가 이전 동윤의 말과 중첩돼 더 큰 여운을 남겨준다.

 

<타짜>(2006)의 고니(조승우 분)와 아귀(김윤석 분)의 마지막 대결. 10분이 넘어가는 이 장면은 모든 대사가 펀치 라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강력한 대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귀를 호강시켜준다. 완급조절 없이 계속해서 강강강으로 밀어붙이면 제일 인상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잊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감독 특유의 날 서고 찰진 대사로 장면 전체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제일 이상적인 ‘강력한 한마디 유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사 한마디로 영화 전체를 휘어잡는 것과 반대로 차곡차곡 대화를 쌓아나가면서 분위기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연애로 예를 들겠다. 이성을 만난 당일에 바로 연인 관계로 발전할 방법이 있기는 하다. 얼굴이 연예인처럼 잘생기고 이쁘거나 돈이 넘쳐나는 등 확실한 수단이 있을 때만 해당한다. 이러한 수단이 아마 위에 언급한 “펀치 라인” 일 것이다. 근거 없이 들이대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만 한다. 일반적으로 이성과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려면  스텝 바이 스텝을 거쳐야 한다. 모임이나 소개팅에서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사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늘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서서히 드러내야 비로소 상대도 마음을 열고 당신을 받아준다. 영화도 그렇다. 강력한 무기가 없는 이상 밑도 끝도 없이 달리기는 금물이다. 첫인상부터 대화로 긴장을 풀어주어 관객들의 호감을 사야 한다. 자신의 장점, 이를테면 몽환적임, 철학적임, 사랑스러움, 긍정적인 등을 적당히 어필하다가 절정에 가서 터뜨리거나 무드를 유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 홍 감독의 대화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영화 <옥희의 영화>(2010) 스틸컷  © 전원사


국내에서 이와 같은 스타일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대표적인 인물이 홍상수 감독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이런 말도 했다. “영화란 지루한 부분이 커트 된 인생이다.” 영화도 상품이기에 관객의 니즈를 충족시켜야 하고 지루하거나 선호하지 않을 부분은 편집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는 이러한 영화의 문법을 파괴하고 과감히 편집 당할 것 같은 대사들도 영화에 삽입한다. 시니컬함이 섞인 블랙코미디로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을 묘사하는 강점이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옥희의 영화>(2010)는 같은 이유로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처음부터 술과 담배 냄새가 그대로 나는 것만 같은 대화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보는 사람들의 콧대를 찌른다. 거기에 민망함과 찌질함은 덤이다. 남자(이선균 분)는 술에 취해 상사에게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여자 한번 어떻게 해보겠다고 술에 의지해 온밤을 기다린다. 이 대목에서의 대사들, 정말 리얼하다. 꼴 보기도 싫지만 다들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이기에 씁쓸하게 웃음 짓는다. 그러다가 남자와 옥희(정유미 분) 서로는 사랑했지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음을 말하며 찝찝하게 막을 내린다.

 

<소셜 네트워크>(2010)의 각본가 애런 소킨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대화로 유명하다.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 분)의 고지식함에 결합하여 색다른 느낌을 전한다. 역시  주인공의 특징이 부각되는 대사가 눈에 띈다. 첫 장면에서 가입하기 쉬운 동아리가 뭐냐고 묻는 여자친구에게 나 무시하냐는 꼬투리를 잡는 것부터 함께 페이스북을 설립한 왈도(앤드류 가필드 분)를 매몰차게 내칠 때까지. 조정대회 신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장면에서 말이 쏟아진다. 마크도 똑같다. 그런데 과하지는 않다. 이게 <소셜 네트워크>의 장점이다. 보통 많은 대사가 한꺼번에 나오면 보는 사람들은 모든 말을 캐치하려다 실패하고 뭐라는지 모르겠다며 혹평한다. <소셜 네트워크> 역시 이런 부류의 각본임을 부정할 수 없으나 감독의 세련된 연출이 더해져 대사를 들으려는 노력 없이도 집중하게 만든다. 좋은 각본이 딱 알맞은 연출을 만나 이상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위의 두 가지 유형이 정석이다. 예외도 있다. 스토리가 있는 영상물에서 나오는 모든 대사는 이야기의 유기적인 전개를 위해 후에 이어질 내용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대부분은 이미 이렇게 알고 있다. 반대로 말해서 내용과 상관없는 말을 늘어놓으면 이상하게 여겨진다. 어떤 관객은 그 대사의 의미를 내내 찾으려다 짜증만 낼 것이다. 짜증을  환호로 치환해낸 괴짜들이 있다. 규칙을 깨고 의미 없는 대사들로 희열을 준 돌연변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우디 앨런 감독이다.

 

둘은 비슷한 면이 꽤 있다. 이들은 “덕후”다.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 자체를 좋아한 나머지 보고 마음에 들어 하는 영화 취향을 자신의 입맛대로 재해석한다. 앨런 감독은 재즈 음악과 미술, 아름다운 도시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들은 말이 많다. 작품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아무 말이나 떠벌떠벌대는 걸 보면 말이다. 떠벌떠벌대는 방식에서 둘 간에 차이가 있다. 타란티노 감독은 말 그대로 의미 없는 대화가 많이 첨가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재밌다! <펄프 픽션>(1994)에서는 자기 상사 발 마사지 받은 이야기로 5분을 넘게, <헤이트풀8>(2015)은 문 닫으라는 얘기만 대여섯 번을 한다. 막무가내에 제멋대로다. 그런데 그게 재밌다!

 

장면 하나를 소개하겠다.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1992)의 한 장면이다.

 

 

▲ "아무 말 대잔치"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타란티노 감독. 영화 <저수지의 개들>(1992) 스틸컷  © 미라맥스



"Like a virgin 알지? 그거 사실은 거기가 큰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 이야기야. 노래 전체가 그거에 대한 은유라고."

 

 “뭔소리야, 그 노래는 연약한 여자 얘기지. 계속 차이다가 자기한테 맞는 남자를 만나는 그런 얘기지.”

 

 “잠깐, 잠깐. 그린베이, 그런 건 관광객들한테나 들려주라고.”

 

 “토비? 망할 토비가 누군데 그래?”

 

 “하여튼 Like a virgin은 자기한테 맞는 남자 만나는 여자 얘기가 아니야. 그건 True blue고. 그건 그런 얘기가 맞긴 한데.”

 

 “True blue는 뭔데?”

 

 “참나, 그걸 몰라?”

 

이런 식으로 마돈나의 Like a virgin이 어떤 노래인지에 대해 7분이 넘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돈을 터는 범죄 영화다. 의미가 없다. 그런데 그게 재밌다! 타란티노 감독은 스토리텔링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독보적인 워딩을 구사했고, 현재까지도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며 최고의 감독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우디 앨런 감독은 어리바리하다. 슬랩스틱처럼 보이기도 하다. 감독 본인이 직접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이 다수인데, 여기서 자신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뭔가 말하는 게 답답하면서 그렇지 않고, 예리해 보일 것 같으면 바로 뒤로 자빠지는 그런 느낌. 맞는 말도 틀린 말처럼, 틀린 말도 맞는 말처럼 들리게 하는 마법이다.

 

<맨하탄 살인사건>(1993)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사를 뽑아봤다. 새 이웃과  헤어지려는 찰나 차를 대접하겠다는 옆집의 제안을 수락하는 캐롤(다이앤 키튼 분)에게  “안돼 안돼 안돼 안돼…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할 시간인데…” 한 마디. 잠을 자려는데 오는 전화를 받고는 “덕분에 잠이 확 달아났다.” 한 마디. 쓰러져 있는 옆집 부인에게 “선물을 주면 깨지 않을까?”라고 캐롤에게 한 마디. 또 많다. 방금 언급한 대사를 살펴보면 웃긴 게 없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흔하게 말하는 평서문이다. 흔한 문장도 우디 앨런이라는 감독과 배우의 캐릭터에 결부되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팔딱 살아난다. 하루에 몇 번씩 하는 말에도 매력을 붙여주는 게 앨런 감독의 장점이다. 영화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시간을 내서 꼭 한번 시청하기를 바란다.

 

이것 말고도 셀 수 없이 많은 좋은 대사들이 있다. 언어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유성영화가 태동한 지 10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수많은 명대사가 우리 귀를 저격한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리가 웃고 여러 감정에 빠진다.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이런 게 좋은 대사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언어는 무궁무진하니까. 그러니 조만간 영화를 볼 일이 있으면 그 대사에 집중하고 곱씹어보려는 시도해보자. 곱씹어볼수록 새로운 느낌이 생기고 당신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을 거다. 좋은 대사를 소개하는 글답게 말을 조리 있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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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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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4.3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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