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들을 통해 행해보는 홍상수의 성찰과 합리화

그의 25번째 영화<인트로덕션>과 홍상수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

이성현 | 기사승인 2021/05/21

주변인들을 통해 행해보는 홍상수의 성찰과 합리화

그의 25번째 영화<인트로덕션>과 홍상수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

이성현 | 입력 : 2021/05/21 [12:35]

[씨네리와인드|이성현 리뷰어] 우리나라는 숫자 매기기를 참 좋아한다. 무언가에 대해 논할 때 항상 서열을 나누려 하거나 이름 앞에 숫자를 붙인다. 세계 4대 스트라이커, 걸그룹 3대 히트곡, 대한민국 3대 영화배우 같은 식으로 말이다. 영화감독도 피할 수 없다. 유튜브에도 한국 영화감독 TOP 10처럼 감독의 순위를 매기는 콘텐츠가 만연하다.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 이창동 감독 등 어떤 이름이 포함되어 있을지는 뻔하다. 이들 못지않게 이러한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 홍상수 감독이다. 2년 연속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의 영광과 함께 그의 25번째 영화가 개봉한다. 제목은 <인트로덕션>. 그의 필모그래피 중 첫 영문 제목이다. 커리어에 있어서 다시 변곡의 순간이 왔나 질문을 던지게끔 하는 제목이다. <인트로덕션>을 통해 뭘 말하고자 하는지 나름대로 해석해봤다.

 

신작 리뷰에 앞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하게 홍상수 입문 가이드를 준비해봤다. 워낙 스타일이 확고하고 호불호도 심하게 갈리기 때문에 어떤 영화를 만드는지 간단히 예습하고 관람한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24편 모두 연출 면에서 그의 기본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짧으면 5, 길면 10분 이상을 롱테이크로 쭉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카메라의 이동도 거의 없는 편이다. 그나마도 줌인, 줌아웃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무드가 상당히 자연스럽다. 등장하는 배우들이 모두 꾸밈없이 최대한 본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CG 혹은 기술 그런 거 전혀 없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닌 제작과정 속에서도 그렇다. 크랭크업까지 제목이 정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각본은 촬영지를 정하고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집필한다. 날씨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배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흘러간다.

 

▲ 연기자에게 대본을 주지 않는 감독.  ©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겉으로 봤을 때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감독의 또 다른 매력이다. 겉으로 봤을 때는 없어 보이지만 관람을 마친 이후 전작과의 미세한 차이점이 무엇인지 곱씹으면서 새로운 담론이 형성된다. 조그마한 차이를 찾아내면 감흥과 여운이 찾아온다. 그 순간에 매료되어 서서히 입덕하고 다른 작품도 찾아본다. 완전하게 홍 감독의 세계를 즐기고 싶다면 그의 전 필모그래피를 정주행하는 걸 추천한다.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정서를 인지하는 재미가 있다. 초기작은 무미건조하고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부터는 유머를 첨가한다. 전체적으로 밝고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서도 유하고 재치 있게 묘사한다. 다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에서 위트를 덜어낸다. 초기작들과는 다르게 개인의 감정에 집중하고 감독 본인의 성찰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그의 키포인트인 술과 사랑이다. 술이 나오지 않는 작품이 없다. 술과 함께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고 사건이 발생한다. 사랑은 일반적일 수도, 끈질길 수도, 뒤틀릴 수도 있다. 끊임없이 변한다. 이들은 '영화가 똑같고 술 마시고 사랑 타령이나 하며 펑펑 울기만 한다'는 비판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 이번에도 술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인트로덕션>(2020) 스틸컷.  © 영화제작 전원사

 

이번 신작은 전과 비슷하게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주 소재로 삼는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김민희 배우와의 불륜관계에 대해 성찰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그 후>(2017) 등에서 이미 사용했던 소재다. 그럼 관객들은 항상 그래왔듯이 자그마한 차이를 파악해야 한다. 위 소재에 대해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는 개인의 차디찬 감정, <그 후>는 관계 속에서 생기는 해프닝과 풍자를 이야기했다면 <인트로덕션>은 제3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륜의 주체는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등장한다. 뒤안길에 남겨진 자들의 생각과 느낌에 집중한다. 초라하고, 허탈하고, 분노한다. 떨쳐내고 싶지만 오랜 시간 동안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아 끈질기게 버틴다. 나를 이렇게 만든 이를 다시 만난다면 한 소리해주고 싶지만, 막상 벌어지니 덤덤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우면서 어떻게든 이 감정을 씻어내고 싶을 뿐이다. 씻어내기 위해 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렇게만 보면 온전한 성찰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감독이 자신과 김민희 배우를 합리화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1, 그러니까 영호(신석호)와 주원(박미소)이 연인이던 시절, 영호는 아버지(김영호)를 뵈러 한의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간호사(예지원)와 오랜만에 재회한 그는 병원 밖에서 대화를 나눈다. 간호사가 예전에 너가 나 사랑한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니?”라고 말한 이후 영호는 간호사를 가만히 끌어안는다. 감독의 의중은 모르겠으나 단순히 지인 사이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지는 건 확실하다. 이를 통해 주변 인물들은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이들은 도리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말한다고 해석된다. 이상하게 의도가 깨끗하진 않아 보인다.

 

 남녀 간의 관계가 메인 플롯이지만 오롯이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여러 상황과 함께 새로이 느껴지는 것들을 버무린다. 제일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소통의 문제다. 주원과 주원의 엄마(서영화), 주원과 화가(김민희), 영호와 배우(기주봉)가 대화하는 장면이 있지만, 어딘가 마음이 맞지 않는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만 잘 안 된다. 세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견도 좁혀지지 않는다. 결국 화를 내거나 소통이 단절된다. 어떻게 보면 영호와 주원의 갈등도 근본적으로 소통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영호와 아버지는 이미 단절되어 있고 어머니(조윤희)와의 거리도 멀어진다. 흔하게 보이는 현대인들의 문제점을 꼬집는 모습이다.

 

▲ 2년 연속 베를린에서 은곰상의 쾌거를 이룬 홍상수 감독.  © 자료사진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사실 평가하기가 애매하다. 단출한 미장센에 날 것 그대로의 시나리오를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지겹다고도 하지만 동시에 독보적이기도 하다. 매번 비슷한 형식 안에서 살짝 메시지를 비트는 식으로 진행되고 특정한 이의 리뷰가 정답도 아니다. 이 글이 감독의 의도와 완전히 비껴 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의 커리어 전체를 하나의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번 신작을 감상하고 홍상수의 영화는 나랑 맞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영화 자체가 어떤 이유로 인해 이렇고, 작품성이 어떻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취향이 아닌 이들에게 추천하지는 못하겠지만 홍 감독의 작품이 취향이거나,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해보자. 그런 다음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느끼고 같이 본 이와 함께 이야기의 꽃을 피워보자. , 참고로 대화할 때 술은 필수다. 홍상수의 영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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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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