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피어난 아이

가난 속 희망을 꿈꾸며 바라본 '잔디인형'(2021)

김혜란 | 기사승인 2021/12/15

흙에서 피어난 아이

가난 속 희망을 꿈꾸며 바라본 '잔디인형'(2021)

김혜란 | 입력 : 2021/12/15 [15:05]

[씨네리와인드|김혜란 객원기자누군가의 큰 의미 없는 질문에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숨기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온, 어찌할 수 없게 몸을 불려 나가는 그것은, 중압감이란 무게를 아직 철없어야 하는 아이의 어깨 위에 올려놓는다. 그것은 잘못이 아닌데도 잘못을 만들고, 부끄럽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며,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가난’이란 그런 것이다.

 

▲ '잔디인형' 스틸컷  © 잔디인형

 

단편 「잔디인형」 속 주인공인 민아도 다르지 않다. 초등학생인 민아는 어느 날 컴퓨터가 고장 나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민아는 온라인 수업을 듣기 위해 친구인 지윤의 집에 들락거리게 된다. 허름하고 좁은 집에서 사는 민아와 달리 지윤은 멀끔한 아파트에서 산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매일 바쁘고 날이 서있는 민아의 엄마와 달리 지윤의 엄마는 늘 웃음이 가득한 친절한 얼굴로 민아에게 맛있는 간식을 내어준다. ‘민아지윤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부러움과 행복을 느끼고, 컴퓨터가 다 고쳐졌는데도 엄마 몰래 '지윤'의 집으로 가곤 한다.

 

잔디 인형 키우기과제를 성실하게 하고 있던 민아와 달리 지윤은 과제의 막바지가 되어서야 베란다 구석에 있던 잔디 인형을 발견한다. 이미 과제를 마무리한 민아지윤에게 잔디 인형을 내어주며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준다. 잔디 인형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찍기 위해 잔디를 점점 짧게 자르던 지윤은 실수로 잔디 인형의 뿌리까지 잘라버린다. 잔디 인형을 무척 아끼던 민아는 크게 동요하지만, 잔디 인형을 흙에 심어준다.

 

▲ '잔디인형' 스틸컷  © 잔디인형

 

아이는 가난을 스며들 듯이 깨닫는다. 어느 것 하나 아이가 자초한 일이 아닌데도 아이는 이유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유 모를 무력감을 감내한다. ‘가난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에, 아이에게 가난은 그렇게 느낌으로 각인된다. 민아가 집이 어디냐고 묻는 지윤의 악의 없는 물음에 쉬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엄마에게 지윤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에게 가난은 의식보다 어떤 감각으로 마음을 강렬하게 파고든다. 놀라운 건, 이런 감각은 아이가 성장해서도 그대로 남아 있어 가난이 부끄럽지 않다는 당연한 상식을 갖게 돼도 쉽게 가난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 유튜브 채널 씨리얼 <교육 양극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中  © 씨네리와인드 김혜란

 

사실 인간관계에서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불문율이다. 가난해 본 적 없는 사람은 단 한 순간도 가난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가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가난의 낡은 감정과 생각들을 간직할 수 있다. 가난해 본 적 없는 사람은 네 분수를 알아야 해.”라는 말의 울분을 모른다. “어른스럽게 자라주어 고맙다.”는 말의 슬픔을 모른다. “기초수급자라는 말의 무게를 모른다. 그들은 단 한 순간도 이 말을 알 수가 없다. 이 말들을 삶 속에 담은 채 살아간다는 건 어른에게도 벅찬 일이다. 구태여 덧붙이지 않아도 아이에겐 잔인한 일이다.

 

누군가는 가난을 양분으로 성장한다는데, 아쉽게도 나는 그런 위인은 아니었다. 대신 가난은 꿈의 폭을 줄이는 데엔 도움이 됐다. 확신 없는 재능에 돈을 퍼붓기에는 집 사정을 너무 잘 알았던 탓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가난에 적응해야만 했다. 꿈 많던 아이는 그렇게 꿈을 잃어갔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보여주기엔 각박하게 살아온 아이는 타인에게 마음을 주는 방법을 모르고 성장했다. 껍데기만 성장해버린 아이는 여전히 가난의 속박 속에서 혼자 눈물이나 훔치는 못난 어른아이가 됐다.

 

▲ '잔디인형' 스틸컷  © 잔디인형

 

그럼에도, 그 순간에도, 혼자 이겨냈던 시간은 값지다. 조금 철 지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계급의 수저론에서 흙수저를 자처하는 나의 위치는, 잃을 게 없어서 추진력이 생긴다. , 잔디 인형의 뿌리를 잘라 먹는 불상사가 있어도 다시 대지의 품으로 돌려주면 되는 일. 다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시작하면 되는 일. 흙에서 태동한 잔디는, 볼품없어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모든 건 다시라는 단어 아래 어마어마한 힘을 얻는 법이다.

 

잔디 인형은 민아’ 그 자체를 상징한다. ‘민아가 성실하게 키워낸 잔디처럼, 척박한 토양에도 기어코 뿌리내릴 희망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먹먹한 영화에 빛의 아지랑이를 조심스럽게 뻗는다. 때론 가난에 못 이겨 누군가를 탓할 수도 있다. 무력할 수도 있다. 그 모든 시간을 이겨내지 않아도 괜찮다. 부서져도 괜찮다. 그저 버티길. 버텨내길아마 가난한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을 민아의 앞날을 응원하며 내 과거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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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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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12.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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